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을 쓰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은 또 다른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계층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사람의 비율을 보았을 때, 원래 부자인 사람 혹은 동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자녀가 대다수였으며 계층사다리를 통해 더 질이 좋은 삶을 살기 원했단 소외계층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하버드나 예일 같은 곳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은 자신이 그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이유는 본인의 능력이 좋아서 때문이지 자신의 집이 부자라거나 원래 학벌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특권, 귀족 계층이 형성이 되었음에도 그 계층이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마이클 샌델은 '능력우선주의 사회'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책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능력으로 치환되어 돈을 많이 벌거나 주요 인사가 되는 것이 왜 나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을 한다면 찬사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 그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맞다. 타고난 재능과 피땀눈물이 섞인 노력이 만나 그 사람이 성공을 한다면 마땅히 찬사를 받아야 한다. 다만 이 책은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찾아 갈고 닦을 노력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에 대한 비판이 된다거나 가난하게 살아도 마땅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 일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호날두나 메시 같이 성공한 1%의 축구선수는 손에 꼽지만 성공하지 못 한 다른 선수의 노력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력은 누구나 똑같이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기계발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부양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 노력이 불가능 할 수 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100% 노력하지 못 한 사람에게 어떤 비난이나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의 성공을 찬양하면서 어떤 사람의 실패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해서는 아니 된다. 인생의 모든 것이 정의롭거나 옳거나 공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