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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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을 넘기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났던 것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와 H. E. B. 스토의 엉클 톰슨 캐빈, 그리고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렇게 3권의 책이었다. 모두 미국의 흑인 노예제가 합법이던 시절이 배경인 책이었다. 내가 흑인 노예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빌러비드를 읽으면서는 1부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빨리 이 책을 다 읽고 덮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생각보다 감정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마 셰드는 과거의 기억 일부를 잊어버리고 싶어했고, 폴 디는 미래로 빨리 나아가려고 했으며, 덴버는 현실이 싫었기에 글 자체가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2부 중간과 끝에 나왔던 대화에서는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2부 중간에 엘라는 세서를 가르켜 '자식 목에 톱질하는 친구'라고 했고, 폴 디가 스탬프 페이드에게 '도대체 검둥이는 얼마나 참아야 합니까?' 라고 물으니 스탬프 페이드가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야지'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원한이 있는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식의 목을 톱질하고 싶었겠으며, 그 어떤 생명이 타고난 종의 특징때문에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정당한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어떤 삶에게는 2020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기에 더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2020년에도 차별때문에 자식의 목을 톱질해서 죽이는 사람이 존재하고, 이주민이라고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고 참을 수 있을만큼 참는 삶이 유효한데 어째서 이 사회는 노예제가 있던 1800년대 중반과 하등 달라진 것이 없는지.

책을 읽으면서 스페인 어학원에서 만난 미국인 여성이 수업시간에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M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지고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나이가 많은 백인 여성이었는데 그 사람은 영화 그린북을 싫어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영화가 불쾌하다.'는 표현을 했다. 어떤 사람에게 인종차별이나 노예제는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책을 읽다가 이 상황이 갑자기 떠올랐었다.

과거는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다. 과거는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의 삶도 중요하다. 나는 미래에 현재의 상황을 가지고 누군가 소설을 썼을 때, 빌러비드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소설이 나오기를 바란다. 흑인 노예제가 폐지 된 것처럼 현재의 차별이 미래에 없어져서 소설의 한 부분으로 쓰여지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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