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러미 프로젝트 - 그리고 래러미 프로젝트 : 십 년 후
모이세스 코프먼.텍토닉 시어터 프로젝트 지음, 마정화 옮김 / 열화당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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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 CGV 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2018서울프라이드영화제를 하였다.
영화제에서 영화는 보지 못 하고(보고 싶은 영화는 시간이 안 맞고, 시간이 될 때 하는 영화는 보고 싶지 않고), 서울 프라이드 스테이지로 진행하는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 낭독극을 보았다.
- 영화제에서 영화 안 보고, 생일 당일 본 공연은 증오/혐오 범죄 십 년 후 낭독극.

아직 보지 못한 래러미 프로젝트 희곡과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 희곡이 책으로 출간되어 구매를 한 후 읽기 시작했다.
- 사실 낭독극 하던 날, CGV 명동씨네라이브러리에서 책을 팔고 있었는데 구매를 깜박해서 그냥 알라딘에서 구매.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 낭독극을 볼 때, 십 년 전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래러미 프로젝트를 보지 못했으니까.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1. 1998년, 매튜라는 게이 남성이
2. 애런과 러셀이라는 두 명의 사람에게 강도 + 폭행을 당했고,
3. 사건 발생 대략 일주일 후 죽었으며
4. 매튜의 죽음 이후 애런과 러셀은 강도, 유괴,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살고 있으며,
5. 해당 사건은 LGBTQAI에 대한 증오/혐오 범죄 판결이 났다는 것이었다.

책이 집으로 배송되고 난 뒤, 읽는 것을 여러 번 주저거렸다. 낭독극을 보던 날, 배우의 입으로 전달되던 언어에서 느껴진 슬픔이 예상보다 오래 기억났다.

1998년 당시. 글에서 느껴졌던 인상은 거센 바람의 가진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마을 같았다. 상처가 났고, 아무도 괜찮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피해자를 아는 사람과 가해자를 아는 사람 모두.
래러미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었다. 몇 세대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피해자를 알거나 가해자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상처 난 자리가 어떤 이유에서든 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모두 조금씩, 아니 아주 많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매튜 셰퍼드가 병원에 실려왔던 날, 그를 처음 살폈던 의사는 피해자 매튜를 치료하기 전 가해자 애런을 치료하고 있었다. 의사에게는 매튜도 애런도 그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니었다.
래러미 프로젝트에서는 극 내내 충격과 공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P58 캔트웨이 의사
어린애 둘이에요! 둘 다 내 환자였고 둘 다 애들이라고요. 둘 다 돌봤다고요…. 두 애의 몸을요. 그리고 … 잠깐이나마 신께서 저희를 보실 때 이렇게 느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모두 다 그분의 아이들이고… 우리의 몸… 우리의 영혼…. 그리고 정말 엄청나게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 다요.

p84 로저 슈미트 신부
다이크. 그런 멸칭이 폭력이라는 거 아세요? 바로 폭력의 씨앗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제가 말한 것 중 어떤 거라도. 어. 아시죠, 어떤 식으로든, 아주 작은 형태라도 그런 종류의 폭력 키우는 데 사용한다면 전 엄청 화낼 접니다. 전 엄청나게 분노할 거예요. 그건 아셔야 합니다.

 


 

사건 발생 10년 후, 래러미는 괜찮아지고 싶었고 괜찮아 보이는 마을이 되고 싶어 했다. 매튜에게 발생했던 모든 일이 사실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우리 마을에는 '증오'란 없다고.
어떤 사람이 잘 짚어냈었다. '약물'이나 '마약'과 관련된 범죄라면, 그저 '단순 강도' 사건이라면 해결하기 쉽지만 '증오범죄'는 그렇지 않아서 그런다고 말이다.
1998년 마을을 관통했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가 되어 남아있었다. 모두 '이제는 괜찮다.'라고 말을 해도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 있었고 어떤 부분의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서서히 변화를 받아들였다. 상처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흉터가 되어 있었다.

 


 

p153~4 로저 슈미터 신부
에런 매키니 와 러셀 핸더슨은 우리 사회가 만든 산물이에요. 그들도 우리의 형제예요. 어떤 식으로든 용서를 해 주자고 말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듣는다면, 날 오해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해한다는 게 동의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 이해한다는 게 관대해지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한, 이해한다는 게 자기 자리에 앉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에런을 이해하려면, 찾아가 봐야 합니다. (중략) 에런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러셀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레그, 에런은 나와 다른 게 아니라 훨씬 더 많이 나와 닮았어요.

p162 존 도스트
어떤 면으로, 네 '우리 마을 래러미에 마약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 받아들이기 쉽거든요. 그건 고칠 수 있는 거니까요. 혐오, 특히 동성애 혐오는 그보다 더 통제가 안 되는 것이죠.

 


 

증오/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나와 무척이나 닮았다. 증오와 혐오는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무언가를 증오하고 혐오한다고 그에게 피해를 주어야 할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폭력의 씨앗은 뿌리가 깊다.

매튜가 죽고 난 뒤, 매튜의 가족과 친구는 증오범죄방지법을 만들기 위하여 싸웠고, 2010년이 되어서야 미국에 증오범죄방지법이 생겼다. 매튜가 죽고, 12년이 지난 후였다.

한국에서는 2018년에도 증오할 자유를 혐오할 자유를 달라고 거리에서 외치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통영에서도 그런 사람을 봤다. 예쁘장한 통영 바다 앞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며, 성소수자 차별을 이야기하였고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였다. 그 사람과 나는 얼마나 다른가? 아니, 얼마나 비슷한가?

우리 모두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도록. 로저 슈미트 신부의 말마따나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고 관대해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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