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영화라서 판타스틱 우먼을 보러 갔다.
판타스틱 우먼의 상영관은 많지 않았고, 나는 굳이 거의 찾아가지 않는 압구정 CGV를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귀에 스페인어 문장이나 단어가 들려오면 '아, 내가 이 정도의 스페인어는 들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에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집중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영화가 지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집중하기 싫을 만큼 영화 도처에 주인공 마리나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깔려있어 그것을 보기 싫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성폭력 전담 수사관이라는 (여성) 경찰이 마리나를 폭력을 당한 흔적이 없는지 조사를 하겠다며 (남성) 조사관에게 데려가 강제로 옷을 모두 탈의하게 만든 다음 사진을 찍는다거나, 이미 죽은 애인의 X아내가 마리나를 '남성'이름으로 부르는 행동도 기억에 남았다.
클럽에서 마리나가 반짝이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환상 신은 아름다웠지만 애처로워 보였다.

더 화가 났던 일은 영화가 끝난 다음 상영관을 나오는데 내 앞에 있던 중년의 여성 두 명이 마리나의 얼굴이 역겹고, 불쾌하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혐오와 폭력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내가 앞에 가던 여성을 붙잡고 화를 냈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최소한 쏘아붙이기라도 해야 되었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화가 나서 머릿속이 뒤엉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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