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번스타인(Albert J. Bernstein)은 여기서 (수사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는데, 그는 공포신화를 동원하여, 평범한 사람으로 행세하고 다니면서 우리를 덮치는 감정의 뱀파이어들에 대해 대놓고 말한다. 이들은 당신의 사무실, 가정, 친구들 사이에 숨어 있을지 모르며 심지어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할 수도 있다. 총명하고 유능하며 카리스마가 있는 그들은 당신의 신뢰와 애정을 사며, 그러고는 당신의 감정적 에너지를 빨아대어 고갈시킨다. 그들의 주요 범주로는 자기만 위하는 나르시시스트, 쾌락주의적 반사회인, 사람을 지치게 하는 편집증 환자, 그리고 과장연기의 대가 드라마퀸(Drama Queen: 조그만 일에도 호들갑을 떨고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과장된 행동을 보이는 여성을 가리킨다.) 등이 있다. 예상할 수 있는 대로 번스타인은 피를 빨아먹는 그러한 어둠의 존재가 당신의 피를 한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빨아먹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막아주는 일련의 방어전략도 제시한다. 

 

- 슬라보예 지젝,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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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ideology) - 현존하는 사회조직과 질서를 적법화하는 한 묶음의 관념들을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이것은 강자들, 지배자들, 엘리트들이 상황(status quo)을 호도하거나 모호하게 하려는 의미론적 게임이다. 이들은 강자에 의한 지배, 억압, 착취, 사회적 불평등 따위의 필요성이나 정당성을 대중매체를 통해서 대중에게 선전한다. 이런 것들이 대중들에게 <의례 그런 것>으로 기정 사실처럼 널리 받아들일 때 이데올로기는 헤게모니가 된다. 

헤게모니(hegemony) - 폭력이나 강압에 의하지 않고 담론에 의하여 어떤 의미작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신자에게 납득시키는 것. 예를 들면 봉건시대에 계급주의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당연한 현실이라고 피지배자들이 믿고 지배자들을 추종했던 것은 헤게모니의 효과이다. 헤게모니는 불가지적이어서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명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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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지난 3학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지난 3학기... 그 3학기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다. 

아마, 2~3년 전쯤에 갔던 고깃집인 듯하다.  

그가 일산밖에 모르고 살아가던 시절. 

그런데 새삼 이 모든게 낯설다. 

맛난 고기가 있고, 화목한 가정이 있다. 

그리고, 어색한 그의 모습이 덧붙여졌다. 

 

 

고3때부터 줄곧 책을 부여잡고 살아왔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내적인 의지와 필요, 그리고 강박. 

책을 읽어야겠다는 강박은 공부와는 또다른 형식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날이면, 아무 것에도 몰입할 수 없는 날이면 

시간을 삼키기 위해 스타크래프트를 했지만 

그렇다고 그 넉넉한 일상의 시간들을 놀기 위한 계획에 할당해오지는 않았다. 

계획하지 않아도 그는 곧잘 놀곤 했다. 쓸쓸하게.

 

책은 다만 생활이 되었을 뿐이고, 가슴의 헛헛함은 

무조건 누군가와 어울려 논다고 해서 달래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책은 일상이고 놀이는 예외였다. 

모두, 삶의 일부였지만 그런 시스템으로 그는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었다. 

하나의 매트릭스로부터 또다른 매트릭스로의 전환. 

자기혁신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이 시기를 그렇게 부를 수 있으리라.

처절하리만치 힘들었지만. 

 

삶 전반에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쉽지는 않다. 

고3 재수 기간동안 그는 '내면의 혁명'을 추구했다. 

그 이전과의 생활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 엄격해져 보는 것도 좋다고. 

 

그런 시간 끝에 대학에 입학했고, 2년의 수련 기간동안의 내공은 

고스란히 대학생활에 반영되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그를 향한 여러 시선의 층위. 

달리고 달렸다. 

대학 입학을 앞둔 2년의 준비기간을 통해 

그 자신의 시간은 탄력을 받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3학기가 흘렀다. 

 

그는 어느 순간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왜 먹어야 하는가 

왜 이야기해야 하는가 

더이상 그는 묻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사르트르를 바라볼 뿐이다. 

삶에 이유 따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작위니까. 

 

다만 그에게 연료가 떨어진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더이상 책을 잡을 수 없었고 

책을 잡을 수 없게 되자 

하루가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한다. 

축구를 하고, 사물놀이를 하고, 게임을 했다. 

 

새삼스럽게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학창시절엔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는지. 

돌이켜보니 그땐 삶의 영역이 좁았고, 마땅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이 없었으므로, 그런 반복도 좋았다. 

 

긴긴 하루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고 어울리고 놀지만 

더이상 허전한 놀이는 즐기지 않는다. 

껍데기의 유희를 그만둔 지는 오래되었다. 

놀이는 여전히 즐겁게 흘러가지만. 

그것은 존재의 축이 굳건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다음 주에 있을 사촌동생들과의 만남을 생각한다. 

그가 어렸을 때, 사촌동생들과는 무엇이든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새삼스러운 고민을 한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그만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다. 

시간은 흘렀고, 사촌동생들도 세상의 이치에 부대끼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달라진 상황에서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해야 할까. 

아니, 이야기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친했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아이들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다. 

이야기, 즉 정체성 없이도 모든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걱정과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고,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있다. 

 

이 모든 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긍정할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의 꼭대기에는 중심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구심점. 구심점 없는 삶은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 

당위는 없으며, 응시하는 시선만이 배경음악이다.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온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3년 전과 같다. 

그의 부모는 여전히 3년 전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그는 지겨워하는 것조차 지겨워졌고, 지겨움에도 지쳐버렸다.  

 

그는 변한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구르지 않는 바퀴에는 멈춤과 동시에 불안이 엄습한다. 

더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으므로, 

어디로 움직여야 할 지 모르겠으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하고 싶을 뿐이다. 

잠시 멈추어도 좋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것은 지난 몇 년의 달려온 거리에 대한 보상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먹고 자고 싸고 있다. 

원하든 않든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다. 

爲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문제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비명은 고통 그 자체다. 

이것은 건강의 문제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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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브루클린 경찰서의 사건 기록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한 흑인 청년이 지갑을 열어 연신 백달러짜리 지폐를 세고 있었단다. 이 바보 멍청이 같은 놈은 생애 첫 월급을 탄 것이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지폐를 세는 것은 아주 위험한 짓이다. 더구나 브루클린같은 곳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때 한 할머니가 흑인 청년에게 다가왔다. 멕시코에서 불법으로 이민을 온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가 단돈 칠백오십이 달러가 없어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칠백오십이 달러가 적힌 병원비 청구서를 흑인 청년에게 보여주며 "이 돈을 내지 않으면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없대요" 하고 말한다. 흑인 청년은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할머니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리고 저에게는 마침 팔백달러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왜 이 돈을 할머니에게 드려야 하는 거죠?" 흑인 청년이 묻는다. 

  "당신에겐 앞으로도 수백 번이나 찾아올 월급이지만 내 손녀에게는 한 번밖에 없는 순간입니다. 그 귀중한 목숨에 대해 한 번만 생각해주세요." 

  그러자 흑인 청년이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할머니와 저는 단지 우연히 이 지하철을 함께 탄 것뿐이라고요." 

  흑인 청년은 지하철 정거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브루클린의 뒷골목에서 칼에 찔린 채 살해당했다. 단돈 팔백 달러 때문에, 지하철에서 청년의 지갑을 본 흑인 갱들의 소행이었다. 피 묻은 칼을 닦으며 한 명이 말했다. 

  "운이 없군. 내가 탄 지하철에서 돈을 세다니." 

  그리고 그 갱들은 멕시코 할머니의 제보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게 할머니가 한 말은 간단했다. 

  "지하철에서 저 흑인 갱들을 봤어요." 

  죽어가고 있던 가여운 멕시코 소녀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지만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지하철에선 함부로 돈을 세지 말자? 범죄는 반드시 처벌받는다? 불우한 이웃을 외면하지 말자?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흑인 청년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당신과 나는 천만 명이 넘게 살고 있는 이 매머드 도시에서 그저 퇴근시간에 우연히 함께 지하철을 탔을 뿐이다. 단지 그것만으로 당신이 나에게 이름도 모르는 소녀의 생명을 위해 한 달 월급을 달라는 것은 무리다. 나는 이 도시의 평범한 소시민이고 평범한 소시민들이 천만 명 모여 사는 이 도시의 연대의식은 생각보다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내가 당신의 슬픈 얼굴을 한 번만 외면하면 나의 지갑은 한 달 내내 두둑하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만날 사람들 중에 당신이 있을 확률은 산술적으로 천만 분의 일이나 된다. 게다가 우리들의 한 달 월급은 이 도시에서 생존하기에 거의 최적화된 돈이다. 내가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이 도시에서 도대체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러니 이 이야기에 교훈 따위는 없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건 교훈을 찾으려 하고 잠언을 얻으려 하지만 교훈과 잠언은 결코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지하철을 하고 있다!" 

 

- 김언수, 『캐비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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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죽음이 뭔지 알아요. 그것은 시간을 입금해놓은 자신의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안 남아 있는 상태죠. 이미 다 써 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차압당했거나. 별다른 건 없어요. 그저 파산한 삶을 복구할 잔고가 없는 거죠. 

- 캐비닛. 

  우린 이 순간을 절망, 고독, 회한, 후회, 회의와 같이 다양한 말들로 표현하죠. 

  그러니까, 그 순간에 시간을 빌려올 수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어요. 말 그대로죠. 시간을 빌린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구요? 당연하죠. 살면서 사람은 누구나 시간을 빌리며 살죠. 항상 그러진 않지만. 평소에는 넉넉하다가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있죠. 우울증이 대표적이죠. 그 순간에 누가 말만 들어줘도 죽게 되진 않을 수 있어요. 친구는 그런 거에요. 내 통장에 시간을 보증해주죠. 사람은 살면서, 서로의 시간을 보증해주고 살아가는 거니까.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죠.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빌릴 수 있고, 그건 다른 사람으로부터만 가능해요. 경제학적인 맥락에서는 시간을 입금하지 않고 돈을 입금하니까, 이런 시스템을 두고 '금융'이라고 하죠. 하지만 삶의 순간에서, 우린 이런 것들을 '인연'이라고 한답니다. 불교적으로 이해하면 가장 그 뜻이 가까울 거에요. 인연이 이어지면, 우리에겐 아직 삶을 복구할 잔고가 남아있는 거죠. 

  어른들로부터, '다 빚지고 사는거다'라는 말 들어봤죠? 오래 살면 깨닫는 거에요. 돈 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통장에 시간이 없으면 끝이에요. 시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빌려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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