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지금까지 많은 걸 언급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빼놓았다. 과학은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심판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이디어는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학의 급속한 발전과 진보는 인류로 하여금 끊임없이 검증된 아이디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가 어떻게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중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많은 관찰을 수행하다 보면 그 관찰 결과 자체가 법칙을 제안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법칙을 찾아낼 수 없다. 실제로 우리는 그보다 좀 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다음 문제가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다. 사실 어디서 나오든지 나오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모든 아이디어는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떤 아이디어가 옳은지 그른지 검증하는 과학적 절차는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든 다 똑같다. 관찰을 통해 예측한 값과 측정된 값을 비교해서 검증할 뿐이다. 그래서 과학에선 아이디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해 사실 별 관심이 없다. - P34

36 물리학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쌓아 온 관찰 데이터들이 너무 많아서, 이 모든 관찰 결과들을 잘 설명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한 번도 제안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누구한테서 나왔든 어디서 나왔든지 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이를 환영하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논쟁을 걸려고 하진 않는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물리학만큼 관찰 데이터들이 많지 않아서 물리학의 초창기처럼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을 판단할 독립적인 방법이 존재한다면 사람들 간에 굳이 논쟁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 P36

36-7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아이디어 자체에만 관심을 가질 뿐,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의 과거 경력이나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이디어를 들어보고, 그것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판단되고, 시도해 볼 수 있으며, 지금까지의 생각들과는 확실히 다르고, 또 지금까지의 관찰 데이터들과 명백히 상반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기꺼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했는지, 아니면 왜 이 사람이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오든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디어의 실질적인 근원은 ‘미지의 세계‘이다. 우리는 그걸 인간 두뇌의 상상력, 혹은 창조적 상상력이라 부르지만,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치 ‘움프‘처럼. - P36

37-8 나는 사람들이 ‘과학에는 상상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사실 과학에는 예술가의 상상력과는 다른, 아주 재미있는 종류의 상상력이 존재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관찰 결과들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제안된 다른 아이디어와는 매우 다른 것이어야 하며, 검증 가능할 만큼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검증할 수 있는 규칙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일종의 기적에 가깝다. 아무런 실마리도 없는 상황에서 ‘중력이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한다‘는 규칙을 찾는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라.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 법칙을 통해 우리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수많은 실험들에 대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 P37

38-9 자연을 묘사하는 규칙들은 매우 수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관찰이 가설을 심판한다‘는 과학의 원리에 기반한 것은 아니며, 모든 과학이 수학적일 필요도 없다. 단지, 적어도 물리학에서는, 규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면 현상을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자연의 법칙은 왜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가 또한 아직 풀지 못한 미스테리이다. - P38

39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대목에 다다른 것 같다. 과학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관찰을 통해 검증된 규칙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관찰이 잘못된 규칙을 도출할 수 있는가? 제대로 성실하게 검증만 했다면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왜 물리학자들은 항상 법칙들을 바꿔야만 할까? 이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내 대답을 먼저 들려드리자면, 규칙은 관찰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틀릴 수 있으며, 관찰이라는 실험 과정은 항상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규칙은 그저 추측된 법칙이며 외삽의 결과일 뿐, 관찰에 잘 부합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규칙이 성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관찰이라는 그물망에 걸러지지 않은채 "꽤 쓸만한 추측"으로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물망의 코가 예전에 쓰던 것보다 점점 작아지면 - 다시 말해 관찰의 정확도가 점점 더 높아지면 - 때론 그 규칙도 그물망에 걸러지게 될 수도 있다. 규칙은 그저 추측일 뿐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외삽인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추측을 하는 것이다. - P39

41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추측한 대로 일이 벌어지게 될 거라는 원리, 그것뿐이다. 지식이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알려 주는 원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재미있다. 이를 얻기 위해 우리에겐 그저 무모한 짓이라도 시도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 P41

41 모든 과학 법칙과 모든 과학적 원리, 그리고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을 빼놓은 ‘단순 명제‘ 가 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어떤 법칙도 완벽히 정확하게 진술할 순 없기 때문이다. 실험자는 자신의 질량 법칙을 기술할 때 질량은 물체의 속도가 아주 높지 않다면 많이 변하지 않는다‘ 라고 법칙을 서술했어야 옳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처럼 과학은 구체적인 규칙을 만들어서 관찰의 그물망을 통과하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게임이다. 한 과학자는 ‘질량이 항상 불변한다‘ 라는 구체적인 규칙을 내놓았고 이 재미있는 가능성은 결국 틀린 것으로 판정되었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진 않았다. 그저 불확실했을 뿐인데, 불확실하다고 해서 위험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무엇이든 구체적인 주장을 하되 확신을 하지는 않는 편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 P41

42 우리가 과학을 통해 얻어 낸 모든 결론들은 그저 반증되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는 ‘잠정적인 결론‘이며, 불확실함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추측을 할 뿐이며, 완벽한 실험을 하진 못했기에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팽이가 회전할 때 질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너무 작기 때문에 "아, 아무런 차이가 안 나는구나."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법칙‘, 다시 말해 관찰이라는 정교한 그물망을 수없이 통과하고 끝내 살아남을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지적 능력과 상상력,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큼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상대성이론이다. 과학 분야에서 아주 작은 성과라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 P42

42-3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의심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데 익숙해 있다. 모든 과학적 지식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과학 지식을 다루어 본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가치있는 일이며 과학을 벗어나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한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지금 알고 있는 해답을 법칙이라 굳게 믿고 있으면, 영영 문제를 못 풀 수도 있다. - P42

43 만약 과학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답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 그 답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그가 "해답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짚이는 구석이 있기는 해." 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직 그 문제를 명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그가 설령 해답이 무엇인지 확신을 갖고 "이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이야. 내기를 해도 좋아." 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할 때에도 머릿속엔 여전히 조금의 의심이 남아 있다. 과학자의 머리에서 의심을 몰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지함과 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해답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기에 내일의 더 나은 해답을 찾아 새로운 탐색의 길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관찰 방법이 개발되는 것뿐만 아니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가설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P43

43-4 만약 새로운 길을 탐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또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거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진실이라 확신하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힘들여 검사해 볼 생각을 안 할 테니까. 지금 우리가 ‘과학적 지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확실한 정도가 제각기 다른 여러 진술들의 집합체‘ 라고 볼 수 있다. 그중 어떤 것들은 매우 불확실하며 또 거의 확실한 것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다. 과학자들은 이 점에 매우 익숙해 있다. 모르는 채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혹자는 "어떻게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가 있죠?"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도무지 이런 질문이 이해가 안 된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가? 내 경우 대부분을 정확히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 쉬운 일이다. 내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점점 알아가게 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 P43

44-5 의심을 할 수 있는 자유는 과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며,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이 자유는 오랜 투쟁의 결과로 얻게 된 것이다. 의심할 수 있도록, 확신하지 않도록 허락받은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 투쟁의 고귀함을 잊어버려 많은 가치를 잃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나는 우리 자신의 무지함을 떳떳이 인정하는 철학과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얻어 낸 진보의 가치를 아는 과학자로서이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유의 가치를 알리고, 의심이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인류의 새로운 잠재 능력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을 느낀다. 무엇이든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개선의 여지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나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바로 이 자유를 요구하고 싶다.
과학에 있어 의심은 분명한 가치를 지닌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마도 대답 없는 질문이 될 것이다. 다음 두 강연에서는 바로 이 점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의심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의심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매우 가치 있는 것이란 점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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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6 일단 천재인의 돌진에 의해 어지러워진 사회적 균형은 어떻게 돌이킬 수 있을까?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독립적으로ㅡ그 운동량에 있어서나 방향에 있어서도 똑같은ㅡ돌진을 한다면 그것이 가장 간단한 해결법일 것이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조금도 무리나 긴장을 일으키지 않고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거의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창조적 천재의 출현을 요구하는 소리에 대해 그 같은 100%의 응답이 나온다는 것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역사상 어떤 사상ㅡ종교든 과학이든ㅡ이 널리 퍼져 있을 경우, 그 같은 사상이 영감을 받은 몇 명의 인간의 머릿속에서 그 사상이 독립하여, 거의 동시에 실제 형태를 이루는 사실을 나타나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례 중 가장 뚜렷한 형태로 나타난 경우가 한 번은 아니지만 기껏해야 한 자릿수에 해당하는 인간들이 즉시 반응하였을 뿐, 그런 사상의 부름에 응하지 못한 인간의 수는 몇 만, 몇 백만의 많은 수를 헤아린다.
어떤 창조 행위라도 본질적으론 독특하고 개별적이라서, 이 본질의 모든 개인이 가능한 창조자이며, 또한 동일한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생기는 동일한 형태에 대한 경향으로 인해 독특하고 개별적인 본질이 저해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과 사소한 정도에서 멈춘다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창조자가 출현할 때는, 가령 다행히도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동료를 얻을 수 있더라도 항상 압도적으로 다수의 활기 없는 비창조적인 대중이 많음을 보게 된다.
사회적 창조 행위는 모두가 개인의 창조자나, 아니면 기껏해야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 성취된다. 그리고 전진이 이루어질 때마다 사회 성원의 대다수가 뒤에 남게 된다.
오늘날의 세계에 현존하는 위대한 종교 단체, 즉 그리스도교·이슬람교·힌두교를 바라보면, 명목상의 신자인 그들 대다수는 혀끝으로만 신앙을 말하면서, 신조가 아무리 고원한 것일지라도 여전히 종교에 관한 한 단순한 이교 신앙과 거리가 멀지 않은 정신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근년에 있어 우리의 물질 문명의 성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서유럽 사회의 과학 지식과, 그 지식을 실제로 응용하는 기술은 위험할 정도로 비교적이다. 민주주의와 산업주의라는 크고 새로운 사회적 세력은 몇몇의 창조적 소수자가 불러일으킨 것으로, 대다수의 인간은 표면적 민주주의와 산업주의 인식 수준에 남아 있어 여전히 이들의 거대하고 새로운 사회 세력이 출현하기 시작한 이전과 거의 같은 지적·도덕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땅의 소금‘을 자부하는 서유럽인이 오늘날 그 맛을 상실하는 위험에 빠진 주요한 이유는 서유럽 사회의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인간에게 전혀 소금이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성장이 창조적 개인 또는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 성취되는 사업이라는 사실은, 결국 선구자가 있는 힘을 다해 전진할 때, 느린 후위 부대를 함꼐 끌고 가는 무슨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비창조적인 다수자는 뒤에 남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그에 입각하여 작업을 진행시켜 온 문명과, 미개 사회의 차이에 대한 정의를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
이 「연구」의 처음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원시 사회가 정지 상태로 있는 데 비해 문명ㅡ발육 정지 문명 이외의 문명ㅡ은 다이내믹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우리는 성장기의 문명은 그 사회체 안에 있는 창조적 개인의 다이내믹한(역동적인) 운동에 의해 행해진다는 점에서 정적인 원시 사회와 다르다고 바꿔 말해야 한다. 그리고 또 이런 창조적 인격은 그 수가 가장 많을 때라도 극히 약간의 소수자로 제한된다고 덧붙여야 한다.
대부분의 성장기 문명은 그 관여자의 대다수가 정적인 원시 사회의 성원과 마찬가지로 활발치 못한 휴지 상태에 있다. 게다가 성장기 문명의 관여자 중 대다수는 겉치레로 칠해진 교육의 도금을 벗기면 미개인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인간이다. 이 점, 인간의 성질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속담에 일면의 진리가 있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뛰어난 인격ㅡ그것을 천재라 부르든 신비가라 부르든 혹은 초인이라 부르든 상관없으나ㅡ은 평범한 인간성 뭉치 속에 던져진 빵 종류에 불과하다. - P274

276-8 "이중의 노력, 즉 누군가가 새로운 발견을 하는 노려과, 남은 자 전부가 그것을 받아들여 그에 순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솔선적인 행위와 복종하는 태도가 어느 사회 속에서 동시에 발견되면 그 사회는 곧 문명이라 부를 수 있다. 실제의 문제로는 제2조건 즉 다수자의 인식력이 제1조건 즉 천재의 등장보다도 확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원시 사회가 뜻대로 할 수 없었던 불가결의 요소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뛰어난 인격은 아니다(자연이 언제나 어디서나 몇 사람의 그 같은 변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여되었던 요소는 오히려 이런 류의 인간이 그 우수함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며 또한 다른 인간이 그의 지도에 따르려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비창조적인 다수자를 실제로 창조적 소수자의 지도에 따르게 하는 데는 실제적이고 또 이상적인 두 가지 해결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훈련에 의한 방법이며······다른 하나는 신비주의에 의한 방법이다. ······첫째 방법은 비인격적인 습관으로 이루어진 도덕적 습성을 강제적으로 주입시킨다. 둘째 방법은 다른 인격을 모방하고 다시 그와 정신적으로 일체가 되어 많든 적든 완전히 그와 동일화되는 것이다."(베르그송)

영혼에서 영혼으로, 직접 창조적 에너지의 불을 붙여가는 일이 확실히 이상적인 방법이긴 하나, 거기에만 의존하는 것은 실행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한 방안이다. 비창조적인 대중에게 창조적 소수자와 동일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문제는 순전히 형식·구조·가치의 동시적 모방 즉, 미메시스적 능력ㅡ인간성은 냉정히 말해 그다지 고급이랄 수 없는 능력의 하나이고, 영감의 요소보다도 훈련의 요소 쪽이 많이 포함된다ㅡ을 발휘시키지 않는 사회적 규모에서는 실제로 해결할 수가 없다.
미메시스(모방)를 활성화하는 것이 당면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이유는 하여간 모방이 미개인의 통상 능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방은 미개 사회와 문명 사회를 통해 사회 생활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특성이지만, 두 종류의 사회에 있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정적인 미개 사회에 모방의 대상은 ‘습관의 굴레‘의 화신인 살아 있는 성원 중에서도 낡은 세대나 죽은 자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문명의 과정에 있는 사회에서는 모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새로운 경지를 연 창조적 인격으로 향하게 된다. 능력은 같으나 각각 보수형과 첨단형이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습을 바꾼 원시적인 사회적 훈련, 즉 기계적이고 거의 자동적인 ‘우로 나란히, 좌로 나란히‘ 식의 훈련이 진정으로 플라톤이 한 인간으로부터 다른 인간에게 철학을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단언하고 있다(「디오니소스에 답한 제7서한」). ‘친밀한 개인적 교제와 용의주도한 지적 교제‘의 유효한 대용품 역할을 이행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해 오로지 대답할 수 있는 점은 지금까지 플라톤식의 방법을 사용해서 다수 인간의 타성을 실제로 극복한 일이 없다는 것, 활발치 못한 다수자를 활동적인 소수자 뒤에 따라오게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친밀한 영감을 준다는 이상적인 방법은 항상 많은 인간을 한 묶음으로 하여 사회적 훈련을 시킨다는 실제적
방법ㅡ그것은 미개인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지휘를 하고 새로운 전진 명령을 내릴 때에는 사회의 진보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ㅡ에 의해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메시스의 신은 그 사회적 ‘자산‘ㅡ재능·감정·사상ㅡ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그는 자신의 자산을 획득한 인간에게보다는, 그 자산을 창조한 인간을 만나 그를 모방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 자산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을 인간들에게 줄 것이다. 사실 모방은 하나의 지름길이다. 이 지름길은 필요한 목적지에 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길인지도 모르나, 동시에 마찬가지로 성장기의 문명을 불가피하게 쇠퇴의 위험에 봉착케 할 수도 있는 의심스러운 편법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그 위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 P276

278-282 은퇴와 복귀-개인
위에서 우리는 창조적 인격이 최고의 정신적 수준을 가진 신비가의 길을 선택한 경우에 받는 도적에 대해 고찰했다. 우리는 그들이 우선 행동에서 황홀 상태로 이행하고, 이어서 황홀 상태에서 새롭고 보다 높은 차원의 행동으로 이행하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은 창조적 운동은 창조적 인격의 심적 체험에 근거했다고 묘사한 것이다. 창조적 인격이 소속된 사회에서 외면적으로 이루는 창조적 운동의 이중성을 표현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은퇴와 복귀라고 부를 수 있다.
은퇴는 창조적 인격이 한동안 사회적 노역과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면, 잠든 채로 있었을지도 모를 능력을 그 자신의 내부에서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그와 같은 은퇴는 창조적 인격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수도 있으며, 또 어쩔 수 없는 사정에 몰려 부득불 강요되는 수도 있으나, 어느 경우나 다 은퇴자는 은둔자(anchorite)로서 변모하는 데 좋은 기회이며, 또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anchorite(은둔자)‘는 그리스 어로 ‘이탈해 가는 자‘이다.
그러나 고독 상태에서 변모를 이룩해 봐야 그 변모한 인격이 처음에 나온 그 사회 환경으로 다시 한 번 되돌아가는 복귀의 서막이 되지 않는 한 아무짝에도 쓸 데 없으며, 또 십중팔구 아무런 뜻도 지니지 않는다. 사회 환경이야말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태어난 환경이며, 만일 영원히 그곳에서 떠나려고 한다면, 인간은 인간성을 버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짐승이든지 신‘ 중 어느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복귀야말로 이 운동 전체의 본질이며 목적이다.
모세가 홀로 시나이 산에 오르는 이야기를 전하는 시리아 사회의 신화에서 이상과 같은 점을 뚜렷이 엿볼 수 있다. 모세는 여호와의 부름을 받아 여호와를 만나기 위해 산에 오른다. 부름을 받은 것은 모세 한 사람뿐이며 다른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떨어져 있도록 명령받는다. 그러나 여호와가 모세를 산 위로 부른 목적은 산에 올라 신과 직접 말을 나눌 수 없었던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전하도록 다시 모세를 사자로서 산에서 내려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모세가 하느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법)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애굽기>) 19:3, 31:18).

14세기 아랍 사회의 철학자 이븐 할둔이 쓴 예언자의 경험 및 사명에 관한 기술도 역시 마찬가지로 강하게 복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불과 한 순간 눈 깜짝할 정도로 재빠르게 왔다 가는 한 순간에 인간 본성을 벗어버리고, 천사의 성질을 몸에 걸치는 천성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천사의 세계에서 영혼은 동료인 인간에게 전할 사명을 받은 다음에 다시 인간본성으로 되돌아간다."(「무카다마트」제2권)

이 이슬람 사회의 예언 교리에 대한 철학적 해석 중에 헬라스 사회 철학에 대한 유명한 구절은 즉,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국가」)의 방향이 인정되리라 생각된다.
그 글에서, 플라톤은 보통의 인간들이 빛을 등 뒤에 지고, 그들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실재가 벽 위에 비치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동굴 속의 죄수로 비유하였다.
죄수들은 동굴 속 벽 위에 보이는 그림자를 궁극의 실재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그것밖에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 한 사람의 죄수가 갑자기 풀려나 뒤돌아서 빛을 향하여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가정한다. 이처럼 갑자기 해방된 죄수는 처음에는 눈이 부셔 당황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의 눈은 차차로 시력을 회복하고 실재 세계의 본체가 그에게 인식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동굴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번에는 어둠 때문에 아까 햇빛 속에 나갔을 때처럼 눈이 안보여 또다시 당황한다. 아까 햇빛 속에 나가게 된 일을 후회했듯이, 이번에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오게 된 일을 후회하나, 후회하는 이유는 전보다도 한층 더 강하다. 한번도 햇빛을 본 일이 없는 동굴 속에 있는 친구들 곁으로 돌아온 그는, 친구들에게 적대시 당할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반드시 친구들에게서 조소를 받을 것이며, 그들로부터 지상에 나갔던 결과는 다만 눈을 완전히 버리고 돌아왔을 뿐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지상으로 나갈 생각을 하는 놈은 바보라는 교훈을 얻는다. <이렇게 해방시켜 높은 곳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참견을 하는 놈은 잡아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그렇게 하겠다.>"

로버트 브라우닝 시의 애독자는 여기서 그가 쓴 라자로의 환상을 떠올릴 것이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부활한 라자로는 마치 딴 사람이 되어 ‘동굴‘로 돌아갔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진귀한 체험을 하고 나서 40년 후의 동일한 노인인 베다디 라자로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카르시시라는 사람이 자기가 속한 조합의 우두머리에게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쓰는 아라비아의 여행 중의 「편지문」을 빌려 묘사하고 있다. 카르시시에 의하면 베다니의 촌민은 불쌍한 라자로가 말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아무 쓸모 없는 마을의 백치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은 카르시시에게는 어쩐지 그렇게는 여겨지지 않는다.
브라우닝은 라자로의 ‘복귀‘를 효과적인 형태로 묘사하지 못했다. 라자로는 예언자도 순교자도 되지 못하고 그 대신 복귀한 플라톤의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편한, 내쫓기지는 않지만 완전히 무시당하는 그러한 운명을 감수했다. 플라톤 자신이 복귀의 시련을 묘사할 때, 매우 매력이 부족한 묘사법을 쓰고 있으므로 플라톤이 그의 선택된 철학자들에게 사정없이 복귀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뜻밖의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선택된 사람들은 철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사상 체계의 본질적인 점이라면, 선택된 사람들은 철학을 배운 뒤 단순한 철학자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또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점이다.
그들을 계발하는 일의 목적과 의의는 그들이 철인왕이 되게 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그들을 위해 설정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이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이 걸어온 길과 같은 길이다.
그러나 길은 동일해도 그 길을 걸어간 헬라스 사회의 철학자와 그리스도교적 정신은 같지 않다. 플라톤의 생각에는, 해방되어 계몽을 받은 철학자의 개인적 이해와 욕구는 여전히 "암흑과 죽음의 그림자 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괴로움과 쇠사슬에 묶여 있는"(<시편> 107:10) 그의 많은 동료들의 몰이해와 당연히 부딪힐 것으로 단정지어진다. 플라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동굴 속 죄수들의 이해가 어떠한 것이든 철학자는 자기 자신의 행복과 완성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인류의 필요에 봉사할 수가 없다. 일단 광명에 이르게 되면, 철학자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은 동굴 밖의 빛 속에 머물며, 언제까지나 거기서 행복하게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헬라스 사회 철학의 근본적인 가르침 중 하나는, 가장 좋은 생활 상태는 관상(테오리아) 또는 ‘바라보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피타고라스는 관상 생활을 행동 생활의 상위에 두고 있으나, 이런 행동과 실천의 가르침이 헬라스 사회의 철학적 전통을 일관해서 흐르고 있었고, 헬라스 사회가 마침내 해체되려 하던 가장 후기 시대에 살고 있던 신플라톤파 철학자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플라톤은 그의 철학자들이 단순한 의무 관념만이라도 세속적인 사업에 동의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철학자들의 거부라는 것이 플라톤의 1세대 전부터 시작된 헬라스 문명의 쇠퇴가 왜 플라톤 세대에 와서도 결국 회복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또한 왜 헬라스 사회의 철학자들이 ‘위대한 거부‘를 했는지 그 이유도 명백하다. 그들의 도덕적 한계는 잘못된 신념의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은 복귀가 아니라 황홀 상태야말로 그들이 개시한 정신적 편력의 전부이며 종국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실제로는 복귀야말로 그들이 하고 있는 운동의 목적이며 정점인데도 불구하고 황홀 상태로부터 고통을 수반하는 복귀로의 이행을 단지 의무의 제단 위에 희생물로 바치는 일이라고밖에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신비적 체험에는 그리스도교의 기본적 덕인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신비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의 작용으로 높은 영적인 접촉 후 곧장 내려가게 하며 아직 구제되지 않은 속세와 도덕적이고도 물질적인 교제를 갖도록 했다.
이 ‘은퇴와 복귀‘의 운동은 인간끼리의 관계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 생활의 특유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일반 생명의 특색이다. 인간이 농업을 시작하여 식물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이 운동이 식물의 생활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은 신화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상상력과 인간의 희망·불안이 농업과 관계가 있는 표현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곡물의 은퇴와 복귀가 제사나 신화 속에서 의인적인 표현으로 바꿔 놓여져, 이를테면 코레나 페르세포네의 약탈과 반환, 디오니소스·아도니스·오시리스 기타 고장마다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보편적인 곡물의 정(精), 또는 시간의 신이 죽음과 부활이 되어 나타나 있고, 틀에 박힌 같은 인물이 갖가지 이름 아래 꼭 같은 비극적 드라마를 반복하는 데도 이런 신전의 제사와 신화는 농업의 관습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력은 또 식물의 생명에 나타나는 은퇴와 복귀의 현상 속에 인간 생활의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즉, 알레고리)하고, 이 알레고리에 의거하여 성장기의 문명에 있어서 걸출한 인물이 대중에게서 이탈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마음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죽음의 문제와 맞붙어 왔다. - P278

297 세력 균형은 한 사회가 몇 개의 서로 독립된 지방 국가로 분화할 때면 반드시 발동되는 정치 역학 계통 중 하나이다.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와는 다른 그리스도교 부분에서 분리한 이탈리아 사회는 동시에 지금 말한 대로의 정치 형태로 변화했다. 저마다 지방적·자치적 권리를 주장하기만 하는 다수의 도시 국가에 의해, 이탈리아를 신성 로마 제국에서 이탈시키려는 운동이 이루어졌다. 즉 격리된 이탈리아 세계 창조와 이 세계 다수 국가의 분화는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세력 균형이 영토·인구·부에 있어서 낮은 수준에 머물게 하도록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어느 기준으로 보나 국가의 평균 규모는 정치적 세력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본다. 그 규모를 평균 이상으로 증대할 우려가 있는 국가는 거의 자동적으로 부근의 다른 국가로부터 도전을 받아 압력에 걸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압력은 당해 국가군의 중앙부에 최대로 가해지며 주변에서 최소로 된다는 것이 세력 균형의 여러 법칙 중 하나이다.
중앙부에서 어느 한 국가가 영토 확장을 목표로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면 주위의 모든 국가에서 빈틈없이 감시하여 기민하게 대항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겨우 수 평방 킬로미터의 토지 주권을 놓고 가장 집요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반대로 경쟁이 악화되고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타국을 침해하는 일 없이 영역을 팽창하였고, 러시아는 발트 해에서 태평양까지 팽창할 수 있으나, 프랑스나 독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알자스나 포젠 소유권을 도전받지 않고 영유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나 미국이 오늘날 서유럽의 낡고 비좁은 민족 국가들과 갖는 관계가 400년 전 이들 국가ㅡ루이 11세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탈리아화된 프랑스와,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이탈리아화된 에스파냐 및 튜더 가, 초기의 국왕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탈리아화된 영국 등ㅡ와 피렌체·베네치아·밀라노 같은 당시의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와의 관계와 같다. - P297

303 영국인이 발명한 의회 정치라는 정치 제도가 나중에 산업주의를 위해 참으로 안성맞춤인 사회적 배경을 제공했다. 행정 담당자가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정치 조직이라는 의미로서의 ‘민주주의‘와, 공장에 집중한 ‘손‘(노동자)에 대한 대량 생산 조직이라는 의미로서의 ‘산업주의‘는 가장 주요한 현대의 두 가지 제도이다.
민주주의와 산업주의, 이 두 가지 제도가 널리 행해지게 된 것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문화가 달성한 정치적·경제적 사업을 도시 국가적 규모에서 왕국적 규모로 옮기는 문제를 위하여 서유럽 사회가 당시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해결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해결법은 다 함께 후세의 영국의 정치가 한 사람이 ‘영광스런 고립‘이라 부른 정책을 취하고 있었던 시대의 영국에서 성취되었던 것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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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두뇌는 기억 장치 이상의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두뇌는 비교, 합성, 분석, 추상화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우리는 유전자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정보를 미루어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두뇌 도서관의 규모가 유전자 도서관의 수만 배나 되는 것이다. 겨우 걸음마를 뗄 줄 아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라. 사람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배우려는 열망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인간 행동의 관습적 유형은 마음 어딘가 깊숙한 곳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특성을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감정을 표출한다. 하나의 종으로 인간을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뇌 피질이 사람을 동물적 인간에서 해방시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비나 도마뱀의 유전적 행동 양식에 더 이상 묶여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자신이 뇌 속에 집어넣은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각자는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써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P555

555-6 어떤 도시를 먼 미래를 내다보고 만든 설계에 근거하여 차근차근 만들어 갔다면, 그 도시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며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기 조금 바꾸고 저기 찔끔 확장하는 식으로 도시를 가꾸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대도시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뒤죽박죽의 상태이다. 그런데 사람의 두뇌도 도시와 비슷하게 성장해 왔다. 도시건 두뇌건 양쪽 모두 처음에는 작은 중심부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커졌다. 진화가 진행되는 동안 먼저 생긴 부분들은 그대로 남아서 그들 나름의 기능을 계속 수행해 왔다. 진화의 과정에서는 두뇌 안쪽의 오래된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좀 더 좋은 새 기능의 뇌로 그 부분을 완전히 대치할 수는 없다. 집을 수리하는 동안에도 낡은 집의 기존 기능이 계속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뇌간을 R-영역이 둘러싸고 그 위를 변연계가 덮고, 그리고 가장 바깥에 대뇌 피질이 자리하게 되었다. 기존 부품들이 비록 오래되기는 했지만 생명 현상의 근본을 좌우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능을 잠시 멈추고 통째로 갈아치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성능이 많이 떨어지고 때로 비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낡은 부품들이 숨을 헐떡이면서 자신의 기능을 계속 발휘하게 두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진화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인 것이다. - P555

557 생존에 꼭 필요한 정보 전부를 유전자에 저장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증가하자 진화는 서서히 두뇌를 새로 만들기 시작햇다. 그리고 세월이 또 어느 정도 흘러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년 전쯤부터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이 새로 만든 두뇌로도 쉽게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진화가 그 다음에 택한 방책은 육체 바깥에다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두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 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이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 P557

558 잘 따지고 보면 책이란 결국 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를 가공하여 유연하고 두께가 아주 얇은 종이를 먼저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종이 표면에 검정색의 꾸불꾸불한 선으로 그림이나 글자를 그려 넣는다. 이렇게 만든 종이들을 여러 장 함께 모은 것이 다름 아닌 책이다. 우리는 책을 한 번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은 지 수천 년이 된 저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저자는 1,000년을 건너뛰어 소리 없이 그렇지만 또렷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의 머릿속에 직접 들려준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 P558

559 금속 활자가 발명된 1450년경 직전까지 전 유럽에 흩어져 있던 책이라고 해야 겨우 수만 권에 불과했다. - 금속 활자의 발명에 관한 서양인들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쉽게 ‘분노‘한다. 우리 민족이 활자를 발명한 것은 이보다 두 세기나 앞선 1234년이었다. 인쇄 및 제책 기술에 관한 언급에 고려의 금속 활자 발명이 빠지는 것을 볼 때마다, 무엇이든 발명 못지않게 그것을 키우고 가꿔 꽃피우는 일 또한 중요함을 실감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세이건과 같은 박식한 학자에게도 우리의 금속 활자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길은 막혀 있었던 모양이다. - P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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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천재가 있다: "평범한" 천재들과 "마술사"들. 평범한 천재란 당신이나 나와 같은 사람들인데 다만 수십 배 더 똑똑할 뿐이다. 그들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은 신비롭지 않다. 그들이 한 일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 역시도 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마술사들은 다르다. 그들이 한 일을 이해하고 난 후에도 칠흑 같은 어둠만 남아있을 뿐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최고 수준의 마술사다.
- 마크 캑 Marc Kac, 수학자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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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카스트제의 용인, 전문화에의 경향,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평형 상태를 확보하려는 정열이라는 다양한 논리에서 볼 때,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의 기원전 철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의 스파르타의 정치가의 유순한 제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스트 문제는 사실상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근년 우리 서유럽 사회가 자칫 빠지고 만 죄악의 하나인 인종적 편견에 오염되어 있었다. 플라톤의 ‘고귀한 거짓‘(「국가」3권)의 착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좌관계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 있는 관계의 차이처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교묘한 농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 제도 옹호도 같은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되도록 되어 잇다고 주창한다. 물론 실제로는 자유인이어야 할 많은 인간이 노예로 되어 있고 노예이어야 할 많은 인간이 자유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 P238

246-7 군국주의는 이 본서의 뒷부분에서 기술될 것이지만, 오늘날 기록에 남아 있는 20여 개가 넘는 문명의 쇠퇴가 일어난 과거 4000년 내지 5000년 사이의 가장 보편적인 문명 쇠퇴의 원인이었다. 군국주의가 문명 쇠퇴의 원인이 되는 것은 그 사회가 분화해서 성립한 몇몇 지방 국가들을 골육상잔으로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이 자살적인 과정에서 그 사회의 조직 전체가 몰렉(서부 셈족의 최고신. 어린이를 희생으로 바치는 습관이 있었다)의 황동 가슴 속에 불살려지는 불꽃의 연료가 된다. 단 한 가지, 전쟁의 기술만이 갖가지 평화의 기술을 희생으로 진보한다. 그리고 이 죽음의 제전으로 인해 군국주의 열광자들이 모조리 죽어버리기 전에 군국주의자들은 잠시 동안 광적인 살육 축제를 그만두고 그 동안 완전히 숙달한 살인 무기를 이민족의 가슴에 돌려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헬라스 사회의 역사를 조사해 보면, 내부지향적 성향을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얻어낸 결론과 정반대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미 말했듯이 헬라스 사회는 그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인구 과잉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지리적 팽창을 행하였다. 그리고 이 시도는 약 2세기 동안(기원전 750~550년경) 계속된 다음에 주위의 비 헬라스 세력에 의해 중지되었다. 그리고 난 뒤 헬라스 사회는 수세에 몰리게 되어, 본북에서는 동쪽에서 온 페르시아에게 공격당하고, 비교적 새로 획득한 영토에서는 서쪽에서 온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았다.
이 기간 중 투키디데스가 말했듯이 "헬라스는 장기간에 걸쳐 사방에서 압박받았다"(투키디데스 「전쟁사」1권 17장). 그리고 헤로도토스가 말했듯이 "그 이전의 20세대에 걸친 기간보다도 많은 동란으로 점철되었다. (헤로도토스「역사」6권 98장). 현대인들은 그리스의 2대 역사가의 위와 같은 우울한 문장을 헬라스 문명의 절정으로 회고되는 뛰어난 시대, 즉 헬라스 사회의 천재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있어 헬레니즘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던 위대한 창조 활동의 시대에 있어 헬레니즘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던 위대한 창조 활동의 시ㅡ대에 대한 묘사라고는 믿기 어렵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이 창조적인 시대에 대해 그렇게 느낀 이유는 단지 그 이전 시대와 달리 헬라스의 지리적 팽창이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 P246

247-8 거의 모든 문명의 역사는, 지리적 확장이 질적 타락과 동시에 일어난 것을 나타내는 실례를 제공한다. 그 가운데에서 둘만 택하기로 한다.
미노스 문명이 가장 넓은 범위로 퍼진 것은 현대의 고고학자가 ‘후기 미노스 제3기‘라는 명칭을 부여한 시기인데, 이 때는 기원전 1425년경 민족 이동의 물결로 북부 야만족 아카이아족이 내려와 크노소스를 약탈한 이후였다. 다시 말해 그 확장은 미노스 사회의 세계 국가인 ‘미노스 해양 왕국‘이 붕괴하고 미노스 사회가 파산하여 공백 시대가 왓는데 이것이 문화의 지리적 확장으로 대체된 파국이었다. 이 후기 미노스 제3기에 속하는 미노스 문화의 물질적 제작품은 이전의 어느 시기의 제작품보다도 넓은 지리적 분포를 나타냈으며, 그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작품상에 뚜렷이 퇴폐의 낙인이 찍혀져 있는 일이 분명 문에 뜨인다. 마치 생산량의 팽창 때문에 기술의 질적 저하의 대가를 지불해야 헀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현재 동아시아 사회의 선행 사회인 중국 사회의 역사도 대개 마찬가지이다. 성장기 동안의 중국 문명의 지배 영역은 황하 유역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앗다. 중국 문명 세계가 남쪽의 변덕스런 양쯔강 유역과 북쪽인 백하보다 더 먼 평원 지대를 병합한 것은 중국 사회의 동란 시대를 중국인이 ‘전국 시대‘라 부르고 있는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중국 사회의 세계 국가 건설자 진나라 시황제는 그의 정치적 경계선을 여전히 남아있는 길고 긴 장성을 쌓아 정하고 그 선까지 진출했다. 시황제의 유업을 이은 한왕조는 더욱 멀리 남쪽에 진출했다. 이와 같이 중국 사회의 역사에서도 지리적 확장의 시기와 사회적 해체의 시기가 때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 P247

249-50 그럼 다음으로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 기술의 향상에 의한 자연 환경 정복의 팽창이 과연 참된 문명 성장의 타당한 기준이 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기술 향상과 사회적 성장의 사이에 과연 긍정적인 상호 관계가 존재하는 증거가 있는 것일까?
현대의 고고학자가 발명한 분류법으로는, 이 상호 관계는 당연한 일로 간주되어 일련의 물질적 기술 향상 단계를 미루어 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문명의 진보를 계속 단계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 사고 방식으로는, 인류의 진보는 구석기·신석기·금석기 병용·청동기·철기, 게다가 우리 자신이 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고 있는 기계 시대까지 기술적 명칭에 의해 구별되는 일련의 ‘시대‘로 표현한다.
이 분류법은 널리 일반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분류법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문명 진보의 단계를 나타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증적 검증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단순히 선험적으로 생각했을 경우에도 의문스럽게 생각되는 몇 개의 이유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첫째로, 이 분류법이 일반시된다는 그 자체부터가 의문시된다. 외냐하면 이 분류법은, 최근에 자기의 기술적 승리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는 사회의 편견에 영합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분류법이 인기 있다는 것은, 각 세대가 그 시대 특유의 일시적인 사고 경향에 따라 과거의 역사를 평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하나의 예증이다.
둘째로 사회적 진보의 기술적 분류법을 의문시하는 이유로서, 연구자는 우연히 입수한 특정 연구 자료의 노예가 될 경향이 있음을 나타내는 명백한 예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선사 시대‘의 인간이 자기를 위해 만든 물질적 도구가 현재까지 자료로 남아 있는 데 반해, 제도나 사상처럼 정신적 제작품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이들 정신적 도구는 그것이 사용되고 있는 동안은 인간 생활에 있어 어떠한 물질적 도구가 이행하는 일보다도 훨씬 중요한 역할을 이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물질적 도구가 유물의 파편으로 남지만, 버려진 정신적 도구는 그러하지 못하므로, 인류의 역사에 관한 지식을 거기서 끄집어내기를 바라고, 인간이 남긴 유물을 취급하는 것이 고고학자의 일이기 때문에 고고학자는 자칫하면,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사유하는 인간을 그 부차적인 역할인 ‘호모 파베르‘의 생산하는 인간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문명이 정지하고 쇠퇴하는 데도 불구하고 기술이 향상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반대로 문명이 움직이고 있는ㅡ전진하는 경우와 후퇴하는 경우를 포함해서ㅡ데도 기술이 정지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육 정지된 문명은 모두가 고도의 기술을 발달시켰다. 폴리네시아 인은 항해자로서, 에스키모는 어부로서, 스파르타 인은 군인으로서, 유목민은 말의 조련자로서, 오스만족은 인간 조련자로서 제각기 탁월했다. 이들은 모두가 기술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이 정지되었던 예이다.
문명이 쇠퇴해 감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향상되는 예로는 유럽의 구석기 시대 후기와 기술적 진보의 계열상으로 보아 바로 그 뒤를 잇는 신석기 시대 전기와의 사이에서 대조적 차이를 들 수 있다. 구석기 시대 후기의 사회는 세공이 조잡한 도구로 만족하고 있었으나, 섬세한 미적 감각을 발달시켜 거기에 회화적 표현을 주는 어떤 종류의 단순한 방법을 발견했다. 그런데 구석기 시대인의 동굴 생활 흔적이 있는 동굴 벽에 남아 있는, 살아 있는 것처럼 솜씨 있게 그려진 동물의 목탄화는 우리의 찬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 전기에 정교하게 연마된 석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것을 구석기 시대인과의 생존 경쟁에 사용하는데 전념했던 탓인지 호모 픽토르(화가적 소질을 타고난 인간)는 자취를 감추고, 호모 파베르가 승리자로서 남았다. 하여간 기술의 견지에서 보아 현저한 진보를 꾀했던 이 변화는 문명의 견지에서 보면 뚜렷한 퇴보이다. 구석기 시대 후기의 예술은 그들과 함께 사멸한 것이다.
또 마야 문명은 기술적으로는 석기 시대의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에 반하여 그 ‘자식‘ 문명인 멕시코 문명과 유카텍 문명은 에스파냐9 인에 의한 정복에 앞선 500년간에 각종 금속 가공법에 있어 눈부신 진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마야 사회 쪽이 그 ‘자식‘ 사회에 해당하는 제2류의 두 사회보다 훨씬 뛰어난 문명을 달성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P249

273-4 내면적 신비 상태, 즉 긴장 없는 긴장의 상태가 개인적인 것일 때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로 베르그송적 천재인이 체험하는 신비의 극치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모순이 신비적 영감을 받은 인격의 출현과 아울러 인간 사이에 생기는 동적인 사회적 관계의 요점이다. 창조적 인격은 그의 동료인 인간을 그 자신의 모습과 흡사한 것으로 다시 만듦으로써, 창조의 협력자로 변모시키려고 한다. 신비가의 매크로코스모스 속에서 일어난 창조적 변화는 그것이 완전한 것이나 확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 다시 매크로코스모스에 적응해 개조되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가설상 변모한 인격의 매크로코스모스는 또한 변모하지 않은 인격의 매크로코스모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비가가 그 자신의 변화에 맞도록 변화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마이크로코스모스를 현상대로 유지함으로써 변화하지 않은 자아와 조화하는 것으로 해 두려는 동료의 타성적인 저항을 받을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사태가 딜레마를 초래한다. 만일 창조적 천재가 그 자신의 내부에서 달성된 변화와 같은 변모를 그의 환경 속에 실현할 수 없다면, 그의 창조성은 그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그는 그의 행동 범위와 전혀 형편이 맞지 않게 된다. 그리고 활동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살아갈 의욕을 잃고 만다. ㅡ가령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나 곤충의 고정된 사회에서, 개미나 벌, 가축이나 늑대 떼의 변종이 동료에게 덤벼들어 죽음을 당하는 것처럼, 이전의 동료로부터 직접적 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살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한편, 만일 이 천재가 이전 동료의 타성 또는 적극적 적성을 극복하는 데 성공하고 그 사회 환경까지도 자아의 변모에 적합한 새로운 질서로 바꿀 수 있었다면, 그 다음에는 범용한 대중이 승리를 얻은 천재의 강대한 창조적 의지로 밀어붙여진 자신들의 새로운 자아를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합하게 하는 일에 성공하지 않는 한, 오히려 평범인들이 생활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복음서 안에 나오는 예수의 다음 말을 뜻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 생각지 마라. 화평이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라."(<마태> 10:34)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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