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한 여자를 좋아하면 할수록, 또 잘 맞으면 잘 맞을수록 정작 섹스의 기회는 줄어드는 듯하다는 것. - P-1
감정 문제에서 여자들은 전문가였고, 남자들이 거친 초보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은 교리나 어머니의 권고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반박 불가능했다. - P-1
마거릿은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남자들마다 끌리는 유형은 각기 다르다. - P-1
그러나 우리가 지금도 가장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눈이다. 안 그런가? 우리가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공동담보를 잡히고,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고, 휴일을 함께 보내고,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아이를 낳았을 때의 그 사람이 여전히 지니고 있는 그 눈 말이다. 갈라서게 됐을 때도 여전히 똑같았던. - P-1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 P-1
장담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어딘가에 연령별 지적수준을 측정한 도표를 꿍쳐놓고 있을 것이다. 분별력, 실용주의, 조직화 기술, 전략적 상식 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반 사안에 대한 이해력을 떨어뜨리는 것들이 아니라 순수지성의 도표를. 그리고 추측이지만, 그 도표를 보면 우리들 대부분이 십육 세에서 이십오 세 사이에 정점을 찍을 것이다. 에이드리언의 일기 일부를 보고 나는 그 연령대에서 그의 면모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을 했을 때, 그에겐 사고思考를 정연히 정리하는 것이 마치 태어난 이유인 것처럼, 두뇌를 활용하는 것이 운동선수가 근육을 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 P-1
"사람들이 왜 널 알코올중독자라고 생각하는 건데?" "그런 사람 없는데." "그런데 아까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내가 그런 게 아니지. 네가 내 머리숱이 줄었다고 했지. 그리고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술의 특정성분 덕에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고." "정말이야?" "대머리 알코올중독자 본 적 있어?" "그런 걸 상상할 시간이 있으면 딴 걸 하겠다." - P-1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P-1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1
행여 하소연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편지를 쓴 당시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르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나의 어떤 성정이 나를 부추겨 그런 편지를 쓰게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고도의 자기기만인지도 모른다. - P-1
예를 들면 이렇다. 사람은 가장 젊고 민감한 시절에 상처도 가장 많이 받는다. 반면 끓어오르던 피가 서서히 잦아들고, 감정이 전보다 무뎌지면서 더 든든히 무장을 하고 상처를 견딜 줄 알게 되면,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운신하게 된다. - P-1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통해 여러 인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 폼 잡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 우리의 비극까지도. - P-1
내 판단이지만,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아니, 내 말뜻은 이렇다.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후로······ 그후로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달리 설명해볼까. 혹자는 역사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모든 것이 붕괴할 때로, 이는 곧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우리 개인의 삶에 적용할 때 과연 타당한 데가 있을까?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동안 죽는다는 것. 설사 그 새로운 것이 다름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 해도. 모든 정치적, 역사적 변화가 얼마 안 가 반드시 실망을 안겨주는 것처럼, 성년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 P-1
생을 접기 전에 그보다 좀 더 광범위한 과정을 밟아선 안 될 이유가 있을까? 날 원망하지 말기를, 날 좋게 기억해주기를. 세상 사람들이 날 좋아했다고, 날 사랑했다고, 내가 나쁜 놈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기를. 이중 해당되는 경우가 단 하나도 없다 한들, 부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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