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옳았음을 보여줄 거라는 것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기억은 하고 있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 - P-1
그러다 좀 더 생각해 보았다. 나는 EF를 믿는 쪽을 더 좋아한다. 사실, 그녀는 늘 진실을 말했다. 그러지 않을 때만 빼고. 예를 들어 크리스가 두 줄 단추가 달린 외투를 입은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 "아 저기? 아무도 아니야." 분명히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과 섹스 문제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는 핵심은 늘 무엇을 또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으면 다 바뀐다. 사후에 남는 믿음은 이럭저럭 진실로 굳어진다. - P-1
사랑하는 사람을 깊이 또 잘 알고 있다 해도 그 사람에게 놀라게 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그게 사랑이 살아 있다는 표시다. 타성은 사랑을 죽인다. 성적인 사랑만이 아니다. 모든 사랑이 마찬가지다. - P-1
삶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사람과 맺는 더 깊고, 더 불온한 관련을 경계한다. - P-1
어쨌든, 중요한 건 다 네 기억에 남을 거야. - P-1
"지나고 나니까 사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얘기." - P-1
나는 여전히 안나를 아주 좋아했다,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라도. - P-1
그 사람의 부모, 친구, 연인, 적, 자식이 각각 보는 방식.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의 진실을 눈치채기도 하고, 오랜 친구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 P-1
뒤늦게 나는 제프처럼 EF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그녀에게서 다른 것을 원했던 사람들도 있다고 인정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완전히 잊었거나, 그녀를 하나의 희극적인 일화로 줄여버린 사람도 동기 가운데 있을 것 ― 어쩌면 많을 것 ― 이라는 점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다시피, 그게 그녀를 좀 더 나만의 존재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 P-1
"모든 만남과 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억……은 수사학의 비유와 같다."
이것은 이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구절이다. 여기서 비유라는 말은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비유라는 뜻으로,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어떤 상황에서 만났다면 그 만남이 그 사람을 표현하는, 뒤집어 말하면 그 사람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비유가 된다는 뜻인 듯하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이 만남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열쇠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앎이란 어디까지나 비유를 통한 간접적·부분적 앎일 뿐 그 사람의 실체 자체나 전모를 알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만남의 횟수를 늘린다고 해서, 누구보다 친밀해진다고 해서 그 앎이 절대적인 수준에 이를 거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인간의 외피 안에 있는 한 물자체物自體를 인식하는 게 난망한 일이듯이 사람 자체를 온전히 인식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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