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각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어둡게 보는 것이지만 동시에 유용한 인간관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고 보면 깊숙한 문제가 있고 함께 살기가 힘든 사람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직 잘 모르는 사람‘뿐이다. - P7
우리는 타인이나 주어진 상황을 끔찍이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고, 타인과 가까워지는 어려운 과제에 자주 실패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이 그저 좇아가야 할 ‘충동‘이 아니라 배워야 할 ‘기술‘이라고 본다. - P7
우리는 섹스와 관련된 수치심을 제거하고, 많은 욕구가 실제로는 친밀함을 찾는 복잡한 과정의 산물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P8
물질적 대상은 우리 삶에서 심리적 또는 영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고매한 이상은 물리적 대상으로 ‘물질화‘될 수 있고, 그런 것을 구매하거나 사용한다면 더 훌륭한 자아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소유물은 심리적으로 중요한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할 대상을 찾는 데 정말로 집중한다면 훌륭한 소비지상주의가 생겨날 것이다. - P18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는 결국 매우 선량한 한두 사람을 만났을 때다. 우리가 선량함을 제대로 이해할 때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인생의 의미가 된다. - P21
선량함은 실제로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많은 가치를 지켜주고 있으며, 이 가치들은 선량함과 상충하지 않는다. 착하면서도 성공한 사람, 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사람, 착하면서도 부유한 사람, 착하면서도 관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선량함은 자신에게 덧씌운 혐의를 벗을 날을 기다린다. 우리는 선량함이 다른 자질과 상생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가치를 새롭게 재발견해야 한다. - P33
우리가 관계 맺는 가족, 친구, 동료와의 사이에서 자선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행위를 ‘해석하는 자선‘을 베푸는 데 인색한 편이다. - P37
자비심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쓴다. 그 사람이 어째서 이렇게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해석한다. 그 사람이 보이는 조급함이나 지나친 야심, 무모함이나 수줍음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그가 살아온 궤적을 알아차린다. - P38
자비심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자의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 P38
자비심은 사람이 몹시 지치고 압박감에 시달릴 때면 형편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자비심은 어떤 이가 욕설을 내뱉을 때 그것이 본심이 아님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대개는 자신이 쉽게 반격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애꿎은 이에게 화풀이하고 상처를 주려는 것임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 P39
일장일단 이론에 따르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누군가의 장점 이면에는 반드시 그만한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당장은 그 단점으로 어떤 손실을 보게 될지 몰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바로 그 단점 덕분에 혜택을 볼 일이 생긴다. 나의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결점은 나쁘기만 한 결점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뛰어난 장점의 어두운 이면일 뿐이다. 장점에서 비롯한 단점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장점을 차례로 열거하고 나서 단점을 열거해보면 좋은 점에는 대체로 그에 상응하는 나쁜 점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P41
한 개인의 모든 장점 이면에는 단점이 존재한다. 단점 없이 장점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장점에는 약점이 따라온다.‘ 한 사람이 모든 장점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 P42
그리스인은 개인이 유능하고 선한 사람이라도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45
우리가 그토록 쉽사리 암담한 결론을 내고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고 상처 주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슴 아프지만 자기혐오라는 심리 현상과 관련이 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남에게 조롱받거나 상처받기 쉬운 먹잇감으로 바라본다. 일하려고 방금 자리에 앉았는데 왜 하필 밖에서는 훈련이 시작된 걸까? 곧 회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째서 룸서비스는 아침을 가져오지 않는 걸까? 전화 교환원이 어째서 빨리 번호를 알랴주지 않고 꾸물거리는 걸까? - P49
"사람들이 사악하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라. 바늘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만 하면 된다." - P52
기분 나쁘게 툭 던지는 한마디, 나를 놀리는 오랜 친구의 농담 한자락, 비아냥거림, 비웃음, 공격적인 댓글 한 줄을 우리는 꽤 자주 마주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는 이런 언행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그럴듯한 설명을 찾아보지만, 만족스러운 해명도, 나를 진정시키는 설명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일상에서 접하는 남들의 불량한 언행에 당황한 채 그런 짓을 당하는 것이 혹시 내 책임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사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맞다. 여기에는 아주 단순하고 냉엄한 진실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못되게 구는 것은 그들이 괴롭기 때문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내면 어딘가에서) 스스로 상처를 나고 있디 때문이다. 나를 헐뜯고 멸시하고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당당하고 씩씩하고 말짱해 보여도 그들이 보여주는 언행은 곧 그들이 병들었다는 증거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은 못되게 굴 필요가 없다. - P54
그들이 타인을 괴롭히고 싶어 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들이 벌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 P56
마음이 평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마음이 괴로움으로 들끓지 않는다면 남을 못살게 굴고 싶은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 P56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에는 공손함을 중시하는 사람의 특별한 지혜를 재조명하고 전파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 공손함의 지혜에는 솔직함을 칭송하는 문화가 일으킨 역효과와 현대 사회의 무도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완화하는 힘이 담겼다. - P68
인간의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언제라도 수치와 좌절을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기서 미친 사람은 나뿐인가‘라는 물음표를 영원히 달고 살아야 하는 위험에 놓여 있다. 예의범절을 따지는 사회에서 타인을 속속들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친구들이 몹시 필요하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내 안에사 일어나는 성적 충동이나 후회, 분노와 소란을 털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은 그들도 살짝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 앞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하고 위안이 되는 친구는 그가 저지른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행동을 똑바로 인정하고 그 모습을 내보인다. 이런 친구를 통해 나 자신을 올바로 평가하고 내면의 충동과 저열함을 좀 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통찰을 얻는다. - P75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이들의 능력은 상대방이 다소 위협적이고 외계에서 온 것처럼 낯설어도 그 사람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때까지 만남을 지속하고 인내하는 데서 나온다. 이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파악한다. - P81
과잉 친절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감을 상실한 이들이 타인의 기분과 필요를 파악하는 데 자신의 경험을 지침으로 삼지 않고 섣부르게 자세를 낮추기 때문이다. - P82
과잉 친절을 보이는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의 근원에는 지나친 겸손함이 자리한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남이 무엇을 좋아할지 파악하는 데 쓸모 있는 자신의 경험을 무시할 정도로 자신감을 잃은 죄밖에 없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이 겪는 실패를 보면서 우리가 기억할 교훈이 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되려면 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고, 먼저 그 솔직함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이들은 설령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다 일을 망쳐도 아무 문제 없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그리고 당당하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선의 길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 실패할 위험을 감수해야만 실제로 친구를 사귈 기회를 얻는다. - P83
수줍음의 뿌리는 타인을 해석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숫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 앞에서 쑥스러워하지는 않는다. 나이, 계층, 기호, 습관, 신념, 성장 배경, 종교 등의 다양한 지표를 기준으로 자기와 매우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입이 얼어붙는다. 다소 불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수줍음은 마음에서 형성되는 일종의 ‘지역감정‘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발생하는 부속물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와 부속물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상대방을 위협하는 이방인, 해독이 불가능한 이방인이라고 크게 딱지를 붙인다. - P84
함께 웃거나 장난스러운 농담을 던지거나 편안하게 있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기에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이다. 숫기 없는 이들이 일부러 불쾌하게 굴거나 심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인식하는 모든 차이점을 넘기 힘든 장애물로 바라보기 때문에 호의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개성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 P85
유난히 활발한 성정도 아니고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지 않아도 인간 본성에 대한 깨달음을 기반으로 세계시민이 되는 사람이 있다. 겉모습과 상관없이 인간은 모두 같은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기에 모임에서 굳게 입을 다무는 사람이나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서먹하게 만드는 사람은 상대방을 암암리에 배척하는 죄를 짓는 셈이다. - P87
세계시민은 사람들 간에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다만 그런 차이에 압도당하거나 겁을 집어먹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차이점 너머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로 결합되어 있음을 감지한다(좀 더 현실성 있는 표현을 쓰자면, 그러리라고 짐작한다). (...) 초반 만남에서 실패하더라도 머지않아 공통점을 찾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모든 인간은 (아무리 겉모습이 달라도) 몇 가지 기본 관심사에서 틀림없이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공통의 기호와 미움, 희망과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설령 그 공통점이 공굴리기라거나 일광욕처럼 사소한 취향일지라도. - P87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비관적이다. 이들이 보는 세상에서는 근대주의자와 전통주의자가 서로 전혀 대화가 안 되고, 열렬한 좌파 활동가는 우파에게 전혀 곁을 내주지 않으며, 무신론자는 성직자와 어울릴 수 없고, 기업주는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 뿐이라고 확신한다. - P88
숫기가 없는 사람은 온통 상대방과의 격차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 - P89
직관이 뛰어나서 수줍음을 타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인식이 배어 있다. 타인이 자기 때문에 언짢아하거나 당황스러울 수 있음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은 자신이 성가신 존재로 전락할 위험성을 감지하는 촉각이 무섭게 발달되어 있다. - P89
내 안에 있는 박애심을 표현할 줄을 모르고 자기 감정을 억압한 까닭에 나에게 마음을 열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하게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계를 긋고 자기 안의 지역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여드름투성이 소년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예쁜 소녀가 자기와 유머 코드가 비슥하고 자기처럼 아버지와 사이가 몹시 나쁘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중년의 변호사는 이웃집 여덟 살짜리 소년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로켓에 대한 꿈아 있음을 찾아내지 못한다. 인종과 나이는 장벽이 되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손해를 초래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지만, 결국 수줍음이란 자신을 너무 특별하게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당한 감정이다. - P89
유혹하는 행위가 이상적으로 기능을 한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무료로 재분배하는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유혹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떳떳한 방식으로 유혹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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