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삼 교수의 중국철학 강의 예문서원 강의총서 5
모종삼 지음, 김병채 외 옮김 / 예문서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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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머우쭝싼(모종삼, 1909-1995)이 홍콩대학교에서 철학에 관심을 가진 일반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중국철학의 특질>을 주제로 열두 차례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강의 시점은 알 수 없으며, 강의록은 1974년 대만에서 출판되었다.

부록은 <중국문화선언>(중국문화에 관해 세계의 인사들에게 알리는 선언, 부제: 우리들의 중국 학술 연구 및 중국문화와 세계문화의 전도에 대한 공통 인식)으로, 모종삼•서복관•장군매•당군의 네 학자가 1958년 1월 1일에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다.

지은이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중국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특히 유불도, 그 중에서도 유학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20세기 서양철학을 흡수하여 새롭게 재해석된 유학을 당대신유학 또는 현대신유학이라고 한다.

머우쭝싼은 중국철학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으로 ‘주체성‘과 ‘내재도덕성‘을 꼽는다. 특히 기독교와 대비하여 유학이 가진 종교정신을 선명히 드러낸다. 그 밖에 ‘자연생명적 창조성‘과 대비되는 ‘도덕생명적 창조성‘, ‘과학과 민주‘와는 다른 방면의 학문으로서의 ‘심성지학‘, ‘논리적 성취‘에 대비되는 ‘인격적 성취‘를 드러낸다.

강의록과 선언을 읽으면서, 특히 20세기 중반이라는 저작 시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서양의 침탈과 그로 인한 청나라의 몰락, 과학기술의과 민주주의라는 소위 선진화의 두 가지 요건에서의 뒤처짐, 전통문화를 모조리 부정하고자 했던 신문화운동, 그리고 대륙을 휩쓴 중국 공산당의 돌풍. 그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은 이후, 여전히 중국 본토가 처한 상황을 암울한 것으로 인식하고, 중국 전통문화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래서인지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다소간 서양에 대비하여 중국철학의 우위를 내세운다는 인상이 없지 않다.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철학 간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일정한 기준을 두고 비교하며 장단점을 논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한국 독자에게는 한국 독자의 관점이 있는 것이며, 그것 역시 국가뿐 아니라 개인에 따라서도 각기 다를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독자분께서 직접 판단하시기를 바란다).

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양철학과 중국철학을 각기 다른 특징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한국철학도 그러할 것이다.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은 이것이다. 결국 우리의 관심사는 한국철학이 아닌가.

(23. 11. 05. 11: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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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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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과 행동 중 제3의 원은 무엇이었을까?
읽은지 한 달 넘게 지났는데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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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리가 학교에서 내내 배웠듯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학문이 아니다.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고, 정부의 정책과 규제는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들의 협상과 합의의 산물이다. 한국사회의 형성과 변화에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컸던 만큼 앞으로의 입장과 태도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이 모두에게 더 공평하고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면, 과학기술도 그러한 가치를 실제로 반영하고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다. - P205

거짓 양성(false positive) 또는 1종 오류(type 1 error)라는 용어로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의학적 예시를 들어 설명하면, 거짓 양성은 ‘어떤 질환에 대하여 양성을 보이는 검사가 그 질환에 걸리지 아니한 사람에게서도 양성을 나타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탐정이 무고한 사람을 지목해 "당신이 범인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거짓 양성‘이다. 반대로 진짜 범인을 향해 "당신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거짓 음성‘이 된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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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에게는 큰 붕이나 작은 새나 어떤 차이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작음과 큼은 비록 다르나, 소요하는 것은 하나이다." 작은 새나 큰 붕이나 할 것 없이 노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붕은 하늘의 못을 향해 날아가며 벌레나 작은 새는 작은 나무에 올라가면 될 뿐이다. 그 둘이 가고자 하는 데는 크거나 작거나 한 다름이 분명히 있으나 그 둘 모두 자신의 본성에 따라 노니는 것이어서 결국 소요에서는 하나라는 논지이다. - P226

혜강은 인간의 본성을 안락함을 좋아하고 어려움을 싫어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고 힘든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 P231

이는 도가철학에서 줄곧 강조하는 정신과 육체의 동일론적 사고이다. - P232

능력이나 실천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우리는 어떤 인물을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가? 재주가 좋은 사람은 끈기가 없고, 끈기가 있는 사람은 재주가 없는 경향처럼 각자의 능력과 그에 따른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극복될 수 없는가? 이른바 영웅은 똑똑함(聰明)과 힘(膽力)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똑똑한 ‘영’과 힘센 ‘웅’의 재질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P241

철학은 이와 같이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 철학의 내용과 방법은 바뀌지만 우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시공을 넘어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대에 무슨 파인가? 그리고 자신이 속한 파는 현실을 어떻게 마주보고 있는가? 떠나야 하는가, 아니면 머물러야 하는가? 과연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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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이런 통증을 받아들입니다. 뜨거운 열정이 남긴 유산이 우리 삶에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애도는 잃어버린 사랑의 흔적을 미래로 가져가라고 우리를 독려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나는 재능있는 작가였던 한 남자를 사귄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어렸습니다.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 글과 씨름할 때 그는 앉은 자리에서 20쪽씩 써내려가곤 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짜증스럽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글로 써낼 수 없다면 내가 한 경험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내게 별 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어떤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글을 쓰려고 앉았을 때 나는 실제로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20쪽은 아니어도 5쪽은 너끈히 썼습니다. 이별은 10년도 더 된 일이건만 그 뒤로 나는 펜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진중한 태도를 내가 어떻게든 이어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선물을 준 그에게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선물이었으니까요. 그는 떠나갔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의 자질 하나는 내게 남았습니다. - P210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과의 매우 친밀한 유대는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이들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죠. 사랑이 개방성을 의미하는 한 이를 피해갈 방법은 없습 214 니다. 인생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마음을 열수록 우리는 더 취약해진다는 사실입니다. - P213

많은 연애지침서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득합니다.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비생산적인 것도 없습니다. 내가 늘 우세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애정 생활을 조종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농밀한 관계 속을 더 잘 헤엄쳐나가는 법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결코 마스터가 되지는 못합니다. 또한 오만해질수록 우리는 넘어질 공산이 큽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불투명함을 인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혼란과 예측 불가능성을 다루는 능력만큼 여러분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 내부에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죠. 사랑의 복잡미묘함을 견딜 만큼 내 마음이 강하다는 걸(그리고 내 삶이 충분이 충만하다는 걸) 아느니보다 더 든든한 보호막은 없습니다.
- P226

시대가 변했습니다. 가족적 가치관의 상실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지만 사람들이 이혼을 일삼는다고 해서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의 붕괴보다 훨씬 더 긴박한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이 있습니다. 테러리즘에서 환경 문제까지 우리 사회는 이전 세대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사람들의 애정생활과는 별 관계가 없죠.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단순히 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때문에 이혼을 피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우리를 더 진지한 관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남자가 내 곁에 있는 것은 사회적인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니까요. - P231

사람들은 열정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욕망이 죽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정말이지, 인공호흡기를 달아 억지로 열정을 유지하느니 열정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때로는 더 낫습니다. 우리는 이미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요? 왜 끝없이 애쓰는 관계가 되어야 하나요? 게다가 노력한 보람마저 적다면요? 사랑을 안정적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가 사랑의 즐거운 즉흥성을 억압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사랑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을 보호하려는 조치들이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 대상을 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를 매혹시켰던 바로 그 정열을 파괴할 수 있다는 거죠.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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