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은 프롤로그 다음 장부터 곧장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10대 미혼모가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기의 이름은 제이다. 알파벳 J는 ‘Jesus‘의 첫 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일종의 복음서처럼 읽힌다. 본성을 과도하게 억압당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제이는 소설에서 흡사 예수의 행보를 보인다. 예수가 제자에 의해 팔아넘겨졌듯 그는 친구의 밀고로 시설로 보내진다. 예수가 유다를 비난하지 않았듯 그는 이후 그를 밀고한 동규의 고통조차 어루만진다.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당했듯 그는 길 위에서 숱한 위기를 겪는다. 예수가 유다의 밀고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듯이 그의 폭주는 또다시 친구의 배신으로 철침판에 의해 끝나버린다. 그는 예수처럼 승천했고, 그를 따르던 이들은 그의 부활을 기다린다.

제이가 자주 내뱉는 말은 이렇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게 만들겠다‘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면, 제이의 말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렇지만 설령 사회 불안요소가 됐을지언정, 그가 결코 악인은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뿐이다. 제이는 타자의 고통에 민감한 타고난 능력으로 약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의 고통 감지 센서라고 규정하면서.

제이는 이단인가? 국가가 불법으로 규정한 삼일절 대폭주를 이끌었던 그지만 결코 이단은 아닌 듯하다. 국가가 시스템에, 기득권에 얽매여 본질을 잃고 있는 동안, 밑바닥에 억눌린 존재들의 고통은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제이는 범법자가 아니라 구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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