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53년 전 영국의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C. P. 스노우는 인문 ·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과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문제가 현대 서구 문명의 중대한 장애물이자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두 문화‘의 폐해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이과‘ 편 가르기를 하는 한국에서 양상을 달리해 나타나고 있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지금 한국 고등학교에서 ‘문과-이과‘ 구분이 낳는 폐해는 매우 심각해 구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문제를 극복해보겠다고 ‘융합‘을 외치곤 있지만, 그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깊이 들어가보라. 정말 소통이 잘 안된다. 정치나 이념 문제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문과 · 이과 모두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에 길들어 각각 그 내부에서도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문과 출신들이 훨씬 더 심각하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사실상 문과 출신들이 지배해왔는데, 이게 불필요한 이념 투쟁을 격렬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야권에서 누군가가 ‘실용주의‘좀 하자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변절‘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그 벌떼 속에 문과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론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경제향우 정치향좌經濟向右 政治向左‘ 실용주의 노선을 관철시켜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 대국으로 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이과 출신이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