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는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도 그렇고 그의 어조도 신경에 거슬렸다. 더욱이 그와의 대화가 남편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경험이 없고 순진해서 대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젊은이가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관심 때문에 거북해하면서 동시에 기뻐하는 표정을 감출 줄도 몰랐다. 그녀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건 남편이 곡해할 것을 알고 있던 때문이었다. - P-1

그녀는 지난 15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임신, 입덧, 모든 것에 무관심해지고, 무엇보다 추해지고……. 출산과 산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 수유(授乳)와 불면의 밤, 이어지는 힘든 일들……. 아이들이 번갈아 아프고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나날들……. 이어서 아이들 가정교육……. 아이들 못된 버릇 고치기……. 아이들 학교 교육, 라틴어……. 정말 너무 힘들어. 게다가 아이가 죽었을 때는…….’
그녀는 호흡 곤란으로 젖먹이 때 죽은 아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이어서 생각했다.
‘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 거지? 이렇게 해서 게 결국 뭐가 오게 되는 거지? 한순간도 평화로울 때가 없이 삶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늘 화를 내고 툴툴거리고 남편을 혐오하면서……. 게다가 살림도 너무 빠듯해. 지금 처지만 봐도 그래. 키티네 집에서 지내지 않았다면 이번 여름을 보낼 방도도 없었잖아. 하지만 언제까지 레빈과 키티에게 기댈 수는 없어. 아빠도 우리를 도와주실 수 없어. 아빠 몫으로 남은 게 거의 없으니까. 어쨌든 남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무사히 넘긴다고 쳐. 운이 좋다면 그럭저럭 아이들을 무사히 키울 수 있게 되겠지. 아이들이 조신하게 자라주는 게 최선일 거고……. 그래,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그 정도를 이루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큰 고생을 해야 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거지? 그러다가 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거야!’ - P-1

돌리는 안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변한 모습에 새삼 놀랐다. 그녀의 얼굴은 여자가 누군가 사랑할 때만 나타나는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미묘한 변화였지만 안나를 잘 알고 있는 돌리는 그 변화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더욱이 이곳에 오면서 돌리에게 떠올랐던 생각들 덕분에 그 아름다움은 곧바로 돌리의 눈에 띄었다. 마치 안나 자신이 그 아름다움을 의식하고 뽐내는 것 같았다. - P-1

그와 병원을 구경하면서, 그리고 각 시설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돌리는 여러 번에 걸쳐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표정을 깊이 살펴보며 스스로 안나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했다. 그의 열정, 그의 활달함에 매료된 그녀는, 안나가 왜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P-1

다음 날 아침 돌리는 브론스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났다. 바르바라나 남자들은 그녀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섭섭해하지 않았다. 오직 안나만이 슬퍼할 뿐이었다. 이제 돌리가 떠나고 나면 이곳의 그 누구도 어제 돌리와 대화하면서 떠올랐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감정을 건드리는 게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것이 그녀의 영혼의 진수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떠나면 그것은 그녀가 영위하는 생활 속에 묻혀버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 P-1

브론스키가 선거하러 떠나는 날 안나는 브론스키의 눈길에서 그가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는 결코 볼 수 없던 시선이었다. ‘그래, 그이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처럼 사랑으로, 자신의 매력으로 그를 붙잡아두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식을까봐 두렵기만 했다. 그녀는 밤마다 모르핀을 먹고서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를 사랑으로 붙잡아두는 것이 어렵다면 자기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그의 곁에 머무는 것이다. 바로 이혼과 결혼이었다. 그녀는 이혼을 간절히 바라기 시작했고, 브론스키나 스티바가 그 이야기를 꺼내면 즉시 승낙하겠다고 결심했다. - P-1

"당신 마치 나를 협박하는 것 같아. 나는 오로지 당신과 헤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인데……."
브론스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시선에는 냉기뿐 아니라 성가신 일을 겪어 잔인해진 사람의 기색이 나타나 있었다. 안나는 그의 시선을 보고 그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순간적인 느낌일 뿐이었지만 그 느낌은 안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 P-1

"그런 말 마오. 나는 결혼한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했다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소."
레빈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하지만 무언가 묻는 듯한 그녀의 다정하고 진실된 눈을 바라보고는 자신도 진심을 담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생각했다. - P-1

모스크바에 온 이래 레빈은 대학 동창인 카타바소프 교수와 친하게 지냈다. 레빈은 카타바소프의 판단력을 존중했지만 그의 명료한 세계관은 영혼이 빈곤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카타바소프는 레빈의 사고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그에게 지적(知的)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타바소프의 명료함이 레빈의 마음에 들었고 레빈의 다양하고 유연한 생각들이 카타바소프의 마음에 들어서 둘은 친하게 지냈다. - P-1

부부는 새벽 3시까지 잠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제야 진정으로 화해하고 잠들 수 있었다. - P-1

그녀는 비록 무의식적이긴 했지만 레빈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상대가 레빈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최근 젊은 남자를 만나면 언제나 그랬다. 그녀는 성실한 기혼자에게서 바랄 수 있는 정도의 목적을 달성했고 또 레빈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레빈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 - P-1

안나는 자신의 불행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준다는 무기(武器)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는 그 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그들을 묶어주고 있는 사랑 곁에, 싸움을 부추기는 사악한 정령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브론스키의 마음에서는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에서는 더욱더 그 악령을 쫓아낼 수 없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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