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는……." 안나는 장갑을 벗으며 대답했다. "사람 머릿수만큼이나 많은 의견이 있듯이 사람 마음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랑이 있다고 봐요." - P-1
그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 P-1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당신 말대로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나를 편하게 내버려둬요." 그의 얼굴이 빛났다. "정말 모르십니까? 당신이 내 삶의 전부인 것을? 나는 지금 내가 절대로 편하지 않기에 당신을 편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과 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게,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평온은 없습니다. 절망과 불행만이……. 아니면 무한한 행복이……. 아, 그건 어떤 행복일까요?" 안나는 이성의 힘을 총동원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를 향해 사랑의 눈길을 던지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P-1
"당신, 키티에게 정말이지 나쁜 짓을 했어요. 그건 정말 나쁜 짓이에요." "제가 나쁜 짓 한 걸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누구 때문에 제가 그런 짓을 했는데요?" - P-1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그녀의 시선을 맞받으며 대담하게 말했다. 그의 눈은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당황한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그건 당신에게는 심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예요." 안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그에게 심장이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방금 제게 나쁜 짓이라고 하신 건 제 실수에 대해서이지, 제 사랑에 대해서는 아닙니다." 브론스키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 내 앞에서 그 단어를 쓰지 말라고 금지했던 걸 잊었나요?" 안나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금지’라는 그 단어 자체가 거꾸로 그가 자신 있게 ‘사랑’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게끔 그를 격려했음을 그녀는 몰랐다. 그 단어를 씀으로써 그녀가 그에 대해 그 어떤 권리를 갖고 있음을 그녀는 인정한 것이다. - P-1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애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투로 말을 했다. 그는 아내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마다 버릇처럼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그런 빈정대는 어조를 갖고 그녀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 P-1
‘사랑한다고? 저이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워서 알지 못했으면 절대로 저 말을 할 수 없었을 거야.’ - P-1
모스크바로부터 돌아온 후 처음 며칠 동안, 청혼이 거절당한 일을 상기하고 얼굴이 벌게지면서 치가 떨릴 때마다 레빈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대학에서 물리과목 낙제점을 받았을 때도 좀 절망했었나? 하지만 결국 다 잘됐잖아.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걸 뭐 그리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야. 세월이 지나면 잊힐 거야. 세월이 약이야." - P-1
하지만 세 달이 지났어도 그 일은 쉽게 잊히지 않았고, 그때 일이 계속 떠올랐으며 마음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그래도 세월은 역시 세월이었다. 게다가 바쁜 시골 일에 몰두하다보니 키티를 떠올리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레빈은 그녀가 시집을 갔거나 곧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는 그 소식이 마치 앓던 이를 뽑듯 자신을 완전히 치유해주리라 기대했다. - P-1
레빈은 키티가 그녀를 버린 남자 때문에 병이 났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레빈을 버렸고 브론스키는 그녀를 버렸다. 결국 브론스키는 레빈을 마음껏 비웃을 수 있게 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자기의 적이 된 것이었다. 물론 레빈이 이 모든 것을 찬찬히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일에서 뭔가 모욕감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 P-1
자네는 봉급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없어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과 내 노동으로 일군 것을 귀하게 여긴다네. 맞아, 우리가 귀족이지 브론스키 같은 사람들이 귀족이 아니야. 이 세상에서 힘깨나 있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걸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저 푼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 아니라고. - P-1
"자네, 지금 누구를 공격하는 건가? 어쨌든 나는 자네 말에 동의해." 레빈이 푼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말한 범주에 자신도 속한다는 것을 느끼며 오블론스키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레빈이 생기를 되찾은 것이 반가워서 즐거운 어투로 말했다. - P-1
그는 자신의 연애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브론스키의 연애는 이미 도시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다. 둘 사이의 연애가 안고 있는 난관,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를 부러워한 것이었다. - P-1
"안 돼.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카테리나(키티)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람이야. 그녀는 이제 내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일 뿐이야. 다 끝난 일일세." - P-1
한편 안나를 질투하며 누군가 안나가 정숙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입을 삐죽 내밀었던 젊은 여성들은 자기네 짐작이 맞았다며 기뻐했다. 그녀들은 안나에 대한 사교계의 평판이 모멸로 바뀔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며 기꺼이 진흙덩어리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P-1
게다가 둘의 관계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아들의 연애는 그녀가 환영해마지않는 멋진 사교계 연애가 아니라 베르테르적인 절망적 정열에 이끌리는 연애로 보였다. 사람들이 그가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입방아를 찧고 있었던 것이다. 브론스키의 형 역시 그에게 불만이었다. 현역 대령인 그는 이 사랑이 오래 갈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인지 그저 일순간의 불장난인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출세를 위해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의 행실에 찬성하지 않았다. - P-1
그는 장애물 경주를 가슴 설레며 기다렸다. 연애 와중이었지만 두 정열은 상충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에게는 연애와는 별개로 심취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를 그토록 흥분시키는 격렬한 열정을 잠시 잠재우고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 P-1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지독한 불행을 맛보았다.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불행이었으며 그가 직접 초래한 불행이었다. - P-1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에요. 나는 정말로 절망했던 거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난 당신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을 생각해요. 나는 그를 사랑해요. 난 그 사람 애인이에요. 나는 당신을 견딜 수 없어요. 당신이 두려워요. 당신을 증오해요……. 이제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는 마차 구석에 몸을 던지고 흐느꼈다. 카레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은 마치 죽은 자의 시선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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