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명예욕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어서, 결코 사람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이거나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혹은 논쟁하여 이기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이었다. - P16

내가 황야의 이리의 삶에 대해 아는 바라곤 보잘것없지만, 여러모로 보아 그가 자애롭지만 매우 엄격하고 신앙심이 깊은 부모와 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고, 이 교육의 원칙은 ‘의지의 파괴’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성의 부정과 의지의 파괴는 이 학생에게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너무나 강인하고 굴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고, 너무나 자긍심이 강하고 정신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들은 그의 개성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만 자신을 증오하도록 가르치는 데에만 성공한 셈이었다. - P20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강인한 사고력 모두를 이 순수하고 순결한 대상, 즉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데 바쳤던 것이다. 그는 모든 풍자, 비판, 악의, 그리고 가능한 모든 증오를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향해 겨누었던 것인데, 이 점에서 그는 뭐니뭐니 해도 철두철미한 기독교인이었으며 순교자였다. - P20

그는 항상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공정했으며,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거의 영웅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율이 자신에 대한 증오 못지않게 마음속 깊이 주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의 생애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본보기였으며, 자기 증오는 지나친 이기심과 똑같아서 종국에는 끔찍한 고립과 절망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예시해 주는 것이었다. - P20

나의 염탐꾼 짓을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긴 하나 정말이지 빈둥빈둥하며 규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의 그 모든 흔적이 처음엔 혐오감과 불신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다.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시민적인 인간으로 일과 정확한 시간 계획에 익숙해져 있을 뿐 아니라 금주가, 금연가이기도 해서 할러의 방에 있는 저 술병들이 저 화가풍(畵家風)의 무질서보다도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22

한번은 지나가는 말로, 몇 년 전부터 소화 기능이 정상이 아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음주 탓이라고 생각했다. - P23

나는 십 분쯤 신문을 읽으며, 무책임한 인간들의 정신이 눈을 통해 나의 내면으로 흘러들어 오는 걸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 인간들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입에 가득 넣고 씹다가, 소화도 시키지 못하고 다시 내뱉는다. - P50

사람들은 하리가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불행했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물론 하리 자신은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말이다. 누구나 자기에게 닥친 불행이 가장 큰 불행이라고 여기는 법이니까.) 누구에게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자기 내부에 이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그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불행한 삶도 나름의 행복한 시간이 있는 법이다. 모래와 자갈 사이에서도 작은 행복의 꽃은 핀다. - P62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 때문에 몰락하고, 돈을 가진 자는 돈 때문에, 굴종하는 자는 굴종 때문에, 쾌락을 좇는 자는 쾌락 때문에 몰락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황야의 이리도 그의 자유 때문에 몰락했다. - P66

모든 강점이 또한 약점이 될 수 있듯이(아니 사실 강점이 곧장 약점이 되는 때도 많다.), - P70

‘나는 한 인간이 어디까지 견뎌 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면, 나는 문을 열고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많은 자살자가 이런 생각에서 엄청난 힘을 얻는 것이다. - P70

자살은 출구이긴 하지만, 좀 낡고 불법적인 비상 출구라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손보다는 삶 자체에 의해 굴복당하고 나자빠지는 쪽이 훨씬 더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모든 자살자가 마음 한 켠에서는 잘 알고 있다. - P70

‘시민적인 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인간적인 상태로서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이고, 인간 행동의 수많은 극단과 대립 쌍 사이에서 중용을 구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대립 쌍 중 하나, 이를테면 성자와 탕아의 대립 쌍을 예로 들어 보면 이 비유가 금방 이해될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인 것이나 신에 접근하려는 노력이나 거룩한 이상에 완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거꾸로 본능적인 생활이나 감각의 요구에 온몸을 바쳐 순간적인 쾌락을 얻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한쪽 길은 정신의 순교자인 성자에게로, 신에 대한 헌신으로 통하고, 다른 쪽 길은 본능의 순교자인 탕아에게로, 퇴폐로의 탐닉으로 통한다. 시민은 이 양자의 중간쯤에서 적당히 살아가고자 한다. - P73

자아를 희생해야만 강렬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시민은 자아를(물론 발육 부진의 자아에 불과한데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 P74

이런 방향에서 황야의 이리의 정신을 살펴보면, 그는 고도의 개성화 때문에 시민이 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성화가 고도로 진행되면, 개성은 자아에 반역하고 나아가 자아를 파괴하려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그는 성자 쪽으로도 탕아 쪽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나, 어딘가 허약한 구석이 있어서 혹은 게으르기 때문에 자유롭고 거친 세계로 도약할 수 없고 시민 사회라는 무겁고 버거우면서도 포근한 별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이 세상 속에 있는 그의 상태이고, 그가 세상과 얽혀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이 중에서 가장 강인한 자들만이 시민의 땅의 대기를 뚫고 우주에 닿는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체념하거나 타협하고, 시민 사회를 경멸하면서도 거기에 귀속되어서, 결국은 살아남기 위하여 그 사회를 긍정함으로써 시민 사회를 강화하고 찬미하고 만다. - P76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이를 저지당한 비극적인 사람들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나 불행한 사람들의 탁월한 발명품인 유머, 오로지(아마도 인간의 가장 독특하고 천재적인 업적일 터인) 유머만이 이 불가능한 일을 실현할 수 있다. - P78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미개한 흑인이나 백치까지도, 그 존재를 두세 개의 핵심 요소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리처럼 지극히 복잡한 인간을 인간과 이리로 소박하게 나누어 설명하려는 것은 가망 없는 유치한 시도이다. 하리는 두 개의 존재가 아니라, 수백 수천의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삶은 (모든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이를테면 본능과 정신 같은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수천의, 무수한 쌍의 극단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 P81

그러나 실제로 어떤 자아도, 그것이 아무리 소박한 것이라 해도,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지극히 다양한 세계, 별들이 빛나는 작은 하늘, 형식과 단계와 상태들의 혼돈, 유산과 가능성의 카오스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혼돈을 통일체로 보고, 자아가 마치 확고한 형태와 분명한 윤곽을 지닌 소박한 현상인 양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만을 누구나 (심지어 최고의 인간까지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행한다. 이 망상은 호흡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삶에 꼭 필요한 요구인 것 같다. - P83

모든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하나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 P83

그런데도 이리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아, 아직도 어린아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노래한 사내와 똑같이 건망증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유년을 노래하는, 호감은 가지만 감상적인 그 사내는 자연으로, 순수로,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도 결코 행복하지 않으며 많은 갈등과 분열과 고민을 겪는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 P89

창조되기 이전의 순수 상태로, 신에게로 이르는 길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리나 어린아이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죄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 즉 점점 더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이다. 불쌍한 황야의 이리인 너에게는 자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인간이 된다’는 멀고도 힘겨운 고난의 길을 가야 할 것이고, 너의 이원성을 다원화하고, 너의 복잡성을 훨씬 더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마침내 평온함에 이르기 위해서 너의 세상을 좁히고, 너의 영혼을 단순화하는 대신 더욱 많은 세계를, 결국은 이 세계 전체를 너의 고통스럽게 확장된 영혼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부처를 비롯한 모든 위대한 인간들은 이 길을 걸었다. 어떤 이는 깨닫고서 어떤 이는 깨닫지 못한 채 자기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걸어갔던 것이다. 탄생이란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신과 새로운 경계를 짓고 격리됨을 의미하고, 고통 속에서 새롭게 생성됨을 의미한다. 모든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고통스러운 개성화를 지양한다는 것, 즉 신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시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을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