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될 때쯤 우리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자신이 결코 불굴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뭔가 완전하지 않은 듯한 이 느낌은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고, 알 수 없는 불만감이 일상의 저변을 흐르게 됩니다. 그 강도는 줄어들기도 하고 세지기도 합니다. 그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 때도 있지만 펄펄 끓는 용암이 되어 우리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아주 잘 숨기고 삽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도 오랜 시간 살 수 있습니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리는 거죠. 시끄러운 자녀들이 있거나 인생에서 다른 야심이 있다면 그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죽이지는 못합니다. ‘그것’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슬픔에 젖어 살거나 자살 충동까지도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작가나 심리상담사, 지식인이나 철학자가 되어 실존적 허무를 이해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도 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 공허함을 ‘무’라고 불렀고 라캉은 ‘결핍’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부르는 이름은 저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면의 공백에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백이 생기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 139 기에 손볼 수도 없습니다. 설령 손볼 수 있다 해도 그 공백을 없앨 방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치르는 대가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를 상쇄할 방법을 찾는 것뿐입니다. 커리어를 쌓거나 가정을 일구거나 친구와의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책이나 잡지, 영화, <아메리칸 아이돌>, 패션이나 골프, 인디 음악, 손뜨개, 도박 등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이나 춤, 음악, 사진, 원예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인터넷의 늪에 빠져 지낼 수도 있고 마약이나 고급 와인, 프렌치프라이, 초콜릿, 컴퓨터 게임, 베스트셀러 책에 빠져 지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존재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고 우리는 그 구멍을 채우려는 희망으로 뭔가를 하나씩 채워넣고 있습니다. 명상 수행자나 불가의 지도자들은 이 공백에 정면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 구멍을 덮으려고만 합니다. - P138
그런데 체리가 필요하긴 할까요? 체리는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은가요? ‘그것’이 그토록 문제가 된다면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좀 더 복잡하게 답하자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황홀한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유혹하는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열정은 바로 그렇게 직조된 것이며 바로 그 ‘알 수 없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끌리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관계에는 정직과 성실성,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146 것’의 아우라 또한 필요합니다. - P145
여러분은 아무 남자에게나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특정 남자에게 투사하는 것은 여러분이지만 여러분의 선택에는 무의식의 논리가 작용합니다. 여러분은 아무 남자나 ‘그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려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그 남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분명치 않은 이것은 구체적인 특징이라기보다는 분위기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사소한 디테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눈썹의 곡선미라든가 손톱의 모양, 눈빛에서 반짝이는 유머, 섬세한 목덜미, 팔뚝에 불거진 섹시한 힘줄일 수도 있습니다. 벌어진 치아나 조금 비뚤어진 콧등처럼 때로 그것은 어떤 결함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남자의 그 어떤 부분도 될 수 있습니다. -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