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에서 성을, 짓밟힌 자유가 아니라 정신적 침해나 ‘외상外傷’으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성범죄 개념이 탄생했고, 이 개념은 서서히 사회 전체로 퍼져 모든 관계를 약하게 만든다. 이런 성범죄 개념을 만들어낸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 정신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인간관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으레 생기는 법이 아니던가. - P20

이로써 여러 결과가 생겼다. 특히 나폴레옹 법전으로 탄생한 네 인물인 남편과 아내, 미혼 남성과 미혼 여성의 성적 권리가 완전히 변했다. ‘나쁜 섹스’를 상징하는 인물이던 미혼 여성은 점점 더 많은 권리를 얻는 반면-게다가 앞으로 가장 많은 권리를 획득할 인물이 바로 미혼 여성인 데 반해-결혼한 여성은 계속해서 권리를 잃는다. 그리고 결혼한 남성에게 가해지던 일부 제약이 사라지는 한편, 미혼 남성은 서서히 결혼한 남성과 같은 제약을 받게 된다.
 ‘성 해방’이라 불린 움직임은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성 해방의 목적은 부부 관계와 성, 친자 관계를 지배하는 제도로서의 결혼을 완전히 죽이는 것이었다. 자기 나름의 합리성과 절차를 지닌 새로운 ‘나쁜 섹스’ 체제로 결혼을 대체하기 위해서, 성에 관한 논리와 형벌을 도구 삼아 뿔뿔이 흩어져 고립된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P71

배우자와 헤어지거나 이혼을 한 다음에, 여자나 여자가 돌볼 자녀에 대한 ‘손해 배상’을 보장해주는 체제로 인해 이 논리는 더욱 강화된다. 바로 이 때문에, 즉 이혼한 다음에 여자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보상이 크기 때문에, 동거하거나 시민연대계약을 맺은 커플보다 결혼한 커플 내에서 여자가 커플 소득에 기여하는 정도가 낮은 것이 아닐까? 이혼하기로 한 여자들(이혼의 70퍼센트를 여자가 결정한다)은 이미 어머니가 된다는 계획을 실현했고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위자료와 미래에 자신이 벌 소득의 평균 20~30퍼센트에 이르는 자녀 양육비를 확보할 수 있다. 비록 이혼한 커플 각자는 모두 삶의 질이 떨어지지만 말이다. 그래서 자녀의 나이가 아주 어릴 때 이혼하는 커플은 많지 않다. 부모가 이혼할 때 보통 자녀는 9세 정도다. - P88

우리의 근대적 가족상에서 부모와 자녀가 맺는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무엇보다, 부모가 이루는 불안정한 부부 관계에 아이들을 맡겨놓는 일이 정당한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불안정한 관계에 따르게 마련인 다툼과 언쟁, 이로 인해 생기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아이들을 맡겨놓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를 말이다. 부부 싸움 문제를 떠나서, 어떤 아이들은 애정이 가득하고 균형 잡힌 부모와 함께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는 반면,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과 주의를 줄 능력이 없는 부모를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을 과연 인정해도 좋은지에 대해서도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느냐 저런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운명이 이토록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민주국가에서 과연 용납될 수 있을까? 한 인간이 공부를 하고 성공적인 직업 생활을 하고 테러리스트나 범죄자가 되지 앟않는 것이 근본적으로 이런 사실에 달려 있따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어머니가 처한 부당한 노예 상태까지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격을 갖춘 기관에 자녀 교육을 맡기고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은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때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가능할 때 자녀를 애지중지 예뻐해주는 일일 것이다.
92 통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체제에서 프랑스인의 40퍼센트는 일단 어른이 되면 자기 가족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토록 무조건 자신을 사랑해주던 어머니조차 보지 않는 것이다. 그 어머니들은 자녀의 어린 시절 내내 암사자처럼 군림했을 것이다. 자신이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너무도 명백하고 ‘본능적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고 파괴적인 문제가 있다. - P91

1970년대에 도입된 새로운 성 규범으로 나타난 가장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여자가 미래에 배우자가 될 사람과 반드시 성관계를 맺은 다음에 커플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성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것이 커플을 이루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사회학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성적인 방황(또는 시도)은 남녀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띤다. 이런 시도는 대부분의 남성에게 배우자를 찾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체험하는 한 방식인 반면, 여성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띤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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