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관계에 헌신하기를 두려워하는 남자들은 관계가 깊어지면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자의 잘못을 찾으려듭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사랑하려고 애쓰지만 헤어질 구실을 늘 뒷주머니에 넣어놓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별안간 키가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거나 너무 외향적인 사람이 돼버립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맘에 안 들어하는 면들은 그들이 처음에 여러분에게 이끌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남자친구는 내가 너무 지적이어서 싫다고 했습니다. 연애 초기에는 나의 그런 지성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자 그는 내가 자신의 말을 오해한 거라고 우겼습니다. 자신은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요. 지킬 박사의 그림자 하이드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았습니다. - P35

나 역시도 처음부터 같이 자고 싶지 않은 남자와는 연애를 한 적이 없다고 나딘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르쳤던 젊은 여성들의 가장 큰 불만이 바로 이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섹스와 여성성은 양립하지 않으며 너무 쉽게 섹스를 허락하는 여자는 문제가 있다는 오랜 사고방식과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그레이 박사가 어디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는 성적으로 확신에 찬 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우리 어머니나 그 이전 세대의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P39

이런 일이 생긴다면 먼저 내가 정말 괜찮은 남자와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열망을 나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줌으로써 좋은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요. 왜 많은 여성들이 오늘날의 여성이 몸담고 있는 현실과 반대되는 이상을 받아들이려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런 이상은 남자들에게서 나오는 걸까요? 아니면 연애지침서의 유혹에 우리가 손 쓸 겨를도 없이 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그 책들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걸까요? 비판적 시각으로 주위를 돌아보면 여러분도 금세 알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강해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자신이 너무 쉽게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개념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급속히 변화해왔습니다. 성역할에 대한 전통적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여자는 천성적으로 소방관이 될 수 없다거나 남자는 훌륭한 간호사가 될 43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 간의 차이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차이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 P42

나는 사회가 ‘자명한’ 것으로 여겨왔던 사실들을 한번쯤 의심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연애처럼 우리에게 가장 뻔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 P44

이런 태도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에 뛰어드는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과감하고 애정 표현이 많은 사람이라면 내가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걱정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TV 드라마들은 우리를 반대 쪽으로 데려갑니다. 실생활에서는 자신에게 이런 열정을 허락하지 못하기에 드라마 속 판타지로 향하게 됩니다. 직접 열정을 불태우며 사는 대신에 열정을 연기하는 허구의 인물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어쩐지 불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판타지는 적어도 사랑이 혼돈스럽고 관리가 불가능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또 이런 드라마들은 우리가 사랑을 하다가 상처를 받더라도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내게 상처를 줄 계획을 세웠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란 본래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온전히 사랑만 할 수 없는 복잡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파에서 애인과 밀어를 나누기 전에 먼저 지구를 구하러 출동해야 할 때도 있고(클라크 켄트의 딜레마), 어떤 여자에게 깊이 빠져 다른 사랑을 할 수 없을 때도 있고(세스 코헨의 딜레마), 내가 가장 원하는 사람이 하필 내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사람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척 베이스의 딜레마).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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