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은 우려에서 기인했을 겁니다. 어쩌면 20세기 말에 생명과학과 뇌과학이 자연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우고 인간의 인격과 정신을 부정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 말입니다. 근대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원이며, 그 인격과 정신을 자연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그런 자연주의적 인식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가 기독교와 우연히 만난 근거가 됩니다. 이런 변화를 ‘포스트 세속화론적 전환’이라 부르기로 합시다. - P210
테일러에 따르면 ‘세속성’이란 개념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국가·교회와의 분리, 즉 정치·종교와의 분리입니다. 이로 인해 종교는 사사화되지요. 또 하나는 신앙의 쇠퇴, 즉 사적 영역으로서 종교가 쇠퇴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테일러가 주목하는 세속성은 제3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조건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테일러는 《세속의 시대》를 쓴 의도를 이 제3의 의미인 세속성과 관련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내가 시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제3의 의미에서 세속적 사회로서 검토하는 일이다. 여기서 내가 명확히 밝히고 싶은 특징이 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던 사회에서, 신앙을 갖는 것이 당연한 신자에게조차도 단순한 선택지에 불과한 사회로 변했다는 점이다. (중략)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이미 자명하지 않다. 그것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환경에 따라 신앙을 계속 갖기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테일러는 이런 세속성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서양 근대의 5백 년을 분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서기 1500년 무렵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도리어 2000년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불가피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테일러가 이 의문을 제기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표현주의 혹은 표현 혁명이라 부르는 현대의 상황입니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것은 자기 자신의 본래적 생활양식과 표현방식을 원리로 작동하는데, 패션으로 대표되는 소비자 중심주의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입장에서 보면 신앙은 본래의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주의했으면 하는 건 테일러가 현대의 세속성을 설명할 때 결코 신앙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분명 표현주의의 입장에 서면 제도적 종교는 쇠퇴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과 연결된 종교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로 새로이 모색됩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를 적극적으로 좇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일러는 《현대 종교의 다양성》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비기독교적인 종교, 특히 동양에 기원을 둔 종교가 융성했다. 뉴에이지형 종교의 모든 활동양상이나 인간주의적 경계와 영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든 견해, 혹은 영성과 치료를 결합한 모든 실천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더하여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전이라면 택하지 않았을 입장에 선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스스로 가톨릭 신자를 자인하면서 그 중추적 교리는 대부분 거부한다. 혹은 기독교와 불교를 조합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의 유무에 확신을 갖지 않은 채 기도한다.
이렇게 보면 테일러가 ‘세속의 시대’에서도 단순히 종교의 쇠퇴설을 주장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눈치챘겠지만 테일러의 세속화 논의는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서양 지역을 대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속화 문제를 고려하려면 세계 전체를 시야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이슬람 원리주의의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면 서양에 국한된 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P212
특히 현대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전까지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새로운 발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작업에 딱 들어맞는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구체적 상황에만 몰두할 때는 전체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현상과 거리를 두고 전체를 바라봐야 사물의 본질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