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나는 애초부터 아이들을 대한민국의 비정상적인 입시 전쟁에 내몰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교육 시장에 던져 넣고 싶지도 않았으며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 경우를 돌이켜 볼 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오직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을 갖고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 주위 사람들과 정답게 지내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못하거나 꿈 없이 살아가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자기 마음속의 속도계에 맞춰 배우고 익히고 만나며 살아가는 삶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조금 부족하고 뒤처질지언정 언제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만 하면서 살지는 않기를 바랐다. - P197

사는 건 원래 카티가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살덩어리처럼 힘에 부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아침 그 덩어리들과 함께 힘겹게 몸을 일으켜야 한다. 모든 걸 내 잘못으로 돌리면 사는 게 힘들어진다. 내가 뚱뚱해서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되는 일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 봤자 좋을 게 뭐가 있나. 그럴 때는 그저 카티처럼 지독히도 나쁜 운을 탓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엔 운이 나빴어. 그렇지만 다음엔 좀 나아지겠지. - P205

과거의 것들은 여전히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 하지만 까밀이 물리 수업에 들은 이야기처럼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의 빛은 현재 존재하는 별이 아니라 40억 년 전의 것이다. 지금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라 지목하는 과거의 상처 역시 이미 지나간 것일 뿐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어떤 경험도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40대의 까밀은 엄마가 돌아가신 아픔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저 술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에 마신 것이다. 남편이 떠난 것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가정을 소홀히 했다기보다는, 술에 빠진 까밀이 남편을 밀어냈기 떄문이다.
그래서 까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다.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현명함. 다시 10대가 된 까밀이 남편과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썼던 이유는 그가 떠나버린 후의 삶이 황폐해지고 망가질 것이라 믿어서였다. 하지만 40대의 삶으로 다시 돌아온 까밀은 망가지지도, 황폐해지지도 않는다. - P213

어른으로서 혼자 살아가는 일은 추위 속에 집을 잃고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엄마의 말대로 우리는 곧 따뜻한 곳을 찾아낼 것이다. 그건 행운이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믿고 힘을 내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전남편이 된 남편과 다시 만나 처음으로 그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홀로 씩씩하게 눈 덮인 길을 걸어가는 까밀처럼. ‘슬픔‘과 ‘기쁨‘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어낸 진짜 어른, 까밀처럼 말이다. - P215

사실 나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한때 텅 빈 아파트에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 두고 생활했던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다. 불필요한 물건을 떠안은 채로 살지 않는 것, 내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을 아껴 가며 오래오래 쓰는 건 중요한 일이다. 쉴 새 없이 돈을 써야 하는 소비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이 많은 것들이 다 필요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무슨 ‘이즘‘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지나치게 의식적이거나, 또는 유행을 따라가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나로서는 어쩐지 실소가 나오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고 보여 주기 위해 매순간 노력해야 하는 생활은 조금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어쩌면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가구나 가전제품이나 소품, 패션 같은 것들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