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이 있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예전에는 중국어 배우는 사람들이 드물었어요. 그런데 이후 중국어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런 희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광받았죠. 지금도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국 다음으로 뜨는 나라가 베트남이잖아요? 베트남이 뜨는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정치와 치안이 모두 안정된 드문 나라고, 교육 수준도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인구가 9000만 명이 넘어요. 베트남어를 배워 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다음 순서는 말레이시아일 가능성이 있는데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서로 비슷해서 한꺼번에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말레이시아 인구와 인도네시아 인구를 더하면 2억 5000만 명이 넘어요. 얼마 전에 제가 봉사 활동으로 상담을 한 적 있는 고3 학생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이란어 전공을 택했다는 거예요. 제가 그 학생보고 참 잘했다고 했습니다. 희소성 있는 능력에 도전해 보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이란이 얼마나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상상도 안 해 보는데, 이 학생은 기꺼이 스스로 희소성을 만들어 가고 있잖아요? - P129

성 평등은 ‘제도’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에서 정규직을 채용할 때 비슷한 조건의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는 것은 온갖 제도와 규칙으로 대응한다 해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예요.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문화적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지요.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해 낸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를 보면, 단지 제도만 바꿔서 된 게 아니라 ‘성별이나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일종의 문화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병행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분 세대에서 바꿔야 할 문화적 관행이 한둘이 아니에요. 결혼할 때 남녀의 비용 부담 비율이 남자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것, 명절에 부부의 동선·역할 부담이 여자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것 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이런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청년 계급의 연대 의식을 높여 줄 거예요.
연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연대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자정 작용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베’ 등의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저항을 위한 혐오’는 용인될 수 있다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지요. 예를 들어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은 많은 사람을 연대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아들을 둔 여성들은 종종 남편은 미워할지언정 자식은 사랑하거든요.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한남’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연대 의식을 느끼긴 어렵지 않겠어요? 그뿐만 아니라 마초와 ‘초식남’ 사이에 교묘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해서 성 평등 의식의 확산을 가로막기도 해요. 혐오 표현은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연대 의식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 겁니다. - P189

대학을 향한 담대한 제안

저는 대학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과 학생 선발권을 맞바꾸는 대타협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공동 입학제에 참여하는 모든 대학에 교수 1인당 1억씩 추가 재정 지원을 한다면(물론 교수 개인이 아니라 대학에 주는 겁니다.) 서울대는 1년에 2,000억 원 이상, 연세대나 고려대는 1,500억 원, 성균관대는 1,000억 원씩을 받게 됩니다. 그 대신 학생 선발권을 국가에 맡겨 달라는 거죠. 대학은 받은 돈을 시설비나 인건비에 투여해서 학부 교육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책임을 지고, 남는 돈은 전액 대학원 연구비에 쓰는 겁니다. 그러면 세계 대학 순위가 높아집니다. 세계의 주요한 대학 평가 순위는 대체로 학부 교육 수준 순위가 아니라 대학원의 연구 성과 순위거든요. 그래서 연구비 투자가 늘면 세계 대학 순위가 높아집니다. 특히 그 중 일정 비율을 ‘장기 연구’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 20년 뒤에 노벨상이 나올 겁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떻게 대학에 입학하느냐고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한 가지 예로 전공을 정한 뒤 1지망 A대학, 2지망 B대학, 3지망 C대학…… 등으로 지원하여 일정 비율씩 추첨 배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서울로 지나치게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지방대 지원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겠지요.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 졸업자의 3분의 1 정도를 수용하는 전국적인 4년제 대학 공동 입학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매년 4~5조 원 정도 들어갑니다. 정부 예산의 1% 수준이니까 해 볼 만하죠. 이러면 사교육비가 정말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래도 대입 경쟁이 없어지진 않아요. 인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없어진다 해도 인기 ‘전공’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꽤 있을 겁니다. 따라서 선발 제도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예요. 우리나라는 복합적인 전형 요소를 정성 평가하는 미국의 입학 사정관제(이른바 학생부 종합 전형)를 도입했다가 탈이 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입시 성적과 내신 성적이라는 두 축의 정량 평가를 이용하여 매우 단순한 대입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요. 영국·프랑스는 입시 성적만 반영하고, 독일·오스트레일리아는 입시 성적과 내신 성적을 합산 반영하고, 캐나다는 내신 성적만 반영하고, 스웨덴은 내신 성적과 입시 성적 중에 택일하여 반영(학생 개인이 선택)합니다.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내신 성적과 입시 성적의 반영 비율을 대학 전공별로 결정해요. 왜 다들 입시 성적과 내신 성적만 가지고 선발할까요? 입시와 내신은 기회가 균등하거든요. 교육에 있어 가장 핵십적인 공공성은 ‘기회 균등’이잖아요.
따라서 섣불리 비교과와 정성 평가 유혹에 빠지지 말고, 입시와 내신으로 돌아가는 게 필요해요. 다만 현재의 입시와 내신은 모두 개혁해야 하는데, 내신 개혁의 핵심은 교사의 수업·평가에 대한 각종 규제를 혁파해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입시 개혁의 핵심은 문항을 논술형으로 바꿔서 창의적 교육과 어긋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새 입시를 마련하는 데에는 교육 당국과 교사, 대학 등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공동 입학·학위제를 통해 경쟁 압력을 낮추면 변별력 압력이나 사교육 우려도 줄어들기 때문에, 입시를 논술형으로 바꾸고 내신에 창의성·다양성을 불어넣는 게 지금보다 훨씬 쉬워질 겁니다.

제가 매우 황당한 제안을 한다고 느껴질 겁니다. 저도 이런 개혁안이 한국 사회에서 낯설게 느껴질 거라는 걸 잘 알아요. 오죽하면 제가 양보 ‘혁명’이라고 이름 붙였겠어요? 여러분은 이런 사회적 타협이 불가능할 이유를 수백 가지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단기 파국과 장기 파국)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게 될수록, 적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질문에 대답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제안에 반대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신의 대안을 내놓으십시오."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