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상류 계급은 상인들과 서민들과 민중들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는지 모르고 있다. - P42

그러나 농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합리적인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완전히 아무런 소용도 없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죄수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만일 사람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거나 없애 버리고 싶어서 가장 참혹한 형벌로 그를 벌하고 싶다면, 그래서 극악한 살인자도 이 벌 때문에 전율하고 미리부터 그를 위협하는 벌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전적으로 쓸모 없고 무의미한 성격을 노동에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만일 지금의 강제 노동이 유형수들에게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라면, 그것은 강제 노동으로는 적합한 일이다. 죄수들은 벽을 만들고, 땅을 파며, 회반죽을 칠하고 집을 짓는데, 이 일에는 생각과 목적이 따르게 마련이다. 유형수들은 가끔 이러한 일에 열중을 해서는, 빈틈없고 재빠르며 훌륭하게 일을 마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일 죄수들에게 강제로, 예를 들어 나무통 하나에서 다른 통으로 물을 옮겨 담고, 다른 통에서 첫 번째 통으로 다시 옮기라고 시킨다든가, 모래를 빻거나 흙더미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쌓게 하고 다시 반대로 하라고 시킨다면, 아마도 죄수들은 며칠 뒤에 목을 매달거나 혹은 그런 모욕과 수치의 고통에서 벗어나 죽어 버리기 위하여 다시 수천 가지의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한 형벌은 고문과 보복으로 변해 버리고, 어떤 합리적 목적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므로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고문과 무의미함과 모욕과 수치는 모든 강제 노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므로 강제 노동은 자유로운 어떤 일보다도, 즉 강제라는 것 때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다. - P44

스메깔로프는 거의 장난치는 일이 없었다. 예술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 P290

세상에는 피에 굶주린 호랑이처럼 냉혹한 사람도 있긴 하다. 채찍으로 때리는 권세에 한번 맛들인 사람, 하느님에 의해 자신과 같이 인간으로 창조된 형제들의 육체와 피, 영혼을 지배하고, 더할 수 없는 모욕으로 그들을 멸시할 수 있는 권력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 자체에 도취하게 된다. 포악함은 습관이 된다. 이것은 차차 발전하여 마침내는 병이 된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 해도 이러한 타성 때문에 짐승처럼 우매해지고 광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피와 권세는 인간을 눈멀게 하는 법이다. 거만과 방종이 심해지고 급기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현상도 달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폭군 앞에서 인권과 시민권은 박탈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 회복과 소생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횡의 가능성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권력이란 마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는 이미 그 기초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해서, 타인을 때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 비리의 하나이며, 사회에 내재하는 모든 문명적인 싹과 모든 시도들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사회 붕괴의 필연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근거인 것이다. - P296

체형을 실제 집행하고 있는 형리는 사회에서 멸시받고 있기는 하지만, 신사적인 형리라면 다르다. 얼마 전에 이처럼 전제적이고 포악한 체형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추상적으로 책 속에서만 언급되는 정도이다. 그런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독재에 대한 유혹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장주, 청부업자는 자신의 노동자가, 혹은 그 가족 모두가 오직 자신들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극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인간은 타고난 천성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으며 피를 통해 물려받은, 말하자면 모유를 통해 전해진 것을 쉽게 극복할 수 없다. 그렇게 신속한 변화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물려받은 원죄를 인식하기는 매우 어렵다. 여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형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형리가 될 수 있는 싹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거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동물적 속성이 각각의 인간에게서 똑같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동물적 속성이 성장 과정에서 다른 모든 자질보다 우성일 때 그는 물론 포악하고 무례한 사람이 될 것이다. 형리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자진해서 되는 경우, 또 하나는 마지못해 의무 때문에 하는 경우다. 자발적인 형리는 물론 모든 면에서 후자의 형리보다 더 악독하다. 사람들은 자발적인 형리들을 혐오하고 증오하며 알 수 없을 정도의, 거의 미신적인 공포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외시한다. 같은 형리에 대해 누구는 미신적인 공포를 갖게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시인이라도 하는 듯한 무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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