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상은 감성 경험 즉 견문을 중시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 때문에 협애한 경험론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잘 활용한다면 마음을 넓히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마음을 협소하게 할 뿐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그것을 잘 활용한다’는 말은 감관을 통해 얻은 경험을 이성적 사유로 잘 분석·분별하여 이성의 진일보한 활동 재료로 삼으며, 경험을 누적시켜 보편적인 인식으로 상승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왕정상은 과학 정신을 지닌 철학자였다. 그는 사물을 관찰하는 데 매우 주의를 기울였고 기존의 이론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의심하였으며, 실험을 통해 논증하려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겨울철 눈꽃은 육각형이고, 봄철 눈꽃은 오각형이라고들 말하면서도 아무도 직접 검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왕정상만은 "매년 봄눈이 내릴 때마다 그 눈송이를 소매에 올려놓고 관찰해 보았더니, 모두 육각형이더라"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직접적인 관찰 경험을 통해 봄눈이 오각형이라는 견해의 잘못을 검증해 냈다.
옛 글에서는 땅벌은 새끼를 직접 낳지 않고 뽕나무 위의 애벌레를 자기 벌집 속에 물어다 넣는데, 칠 일이 지나면 그 애벌레가 새끼 땅벌로 변한다고 하였다. 왕정상은 집에 거처하면서 매년 땅벌집을 관찰하였다. 그는 땅벌이 자기 벌집에서 새끼를 낳은 뒤 각종 벌레를 자기 벌집 속에 채워 넣었으며, 며칠이 지나자 새끼가 모양을 갖춰 태어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땅벌 새끼는 벌레를 먹은 뒤 벌집을 뚫고 나온 것이다. 왕정상은 "수년 동안 관찰해 봐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였따. 그는 이 사실을 통해 옛 사람들의 많은 견해들이 실제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주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예들은 왕정상이 과학적 태도를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음을 밝혀 주며, 또 명대 기학이 실학으로 발전해 나갔던 논리적인 필연성을 드러내 준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철학은 동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세계관과 논증의 방법론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 P456
왕기) 따라서 ‘지’는 청정심이며 ‘식’은 분별심이다. ‘지’는 머무는 곳이 없으면서도 마음을 낳지만, ‘식’은 굳어지고 막히며 선택하면서 집착한다. ‘지’와 ‘식’의 관계는 마음과 뜻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들의 구별은 모두 윤리적인 의미와 존재론적인 의미를 겸한다. 덕성 양지인 동시에 청정 본심이기도 하다. 또 ‘지’와 ‘식’의 관계는 성과 정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왕기는 "뜻이란 마음의 작용이고, 정이란 성의 자식이며, ‘식’이란 ‘지’의 구별이다. 마음은 본래 순수하지만 뜻에는 선악이 있다. 성은 본래 적막하지만 정에는 진위가 있다. ‘지’는 본래 혼연하지만, ‘식’에는 구별이 있다"고 하였다. 마음과 성과 ‘지’는 모두 본체이고, 뜻과 정과 ‘식’은 모두 작용이다. ‘식’의 특징은, 그것이 윤리적이며 생존적인 함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인식적인 의미도 함께 갖는다는 데 있다. ‘식’은 많이 배우고 많이 들으면서 이해를 추구하는 경향을 띠기 때문에 반성적인 양지와 대립된다. 그러므로 지식에 관한 논변에는 분명히 학문 공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지식에 관한 논변은 전체적인 심학의 전통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 P502
왕간) 어떤 사람이 ‘안신설’을 의심하면서 "백이와 숙제는 몸을 편안케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편안케 하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몸을 편안케 하고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몸은 편안하지 못하면서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몸도 편안케 하지 못하고 마음도 편안케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천지만물 때문에 몸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근본을 잃은 것이라고 말한다. 천지만물로부터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말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거부한 채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역대의 유학자들은 모두 그들의 절조를 표창하였다. 맹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생명이란 비록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도덕 이상이다. 따라서 사람이 도덕 이상을 위해 생명을 희생하는 일은 고상한 행위다. 그러나 왕간이 생각할 때, 생명을 지닌 몸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므로, 몸이 없다면 그 밖의 것들은 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왕간은 백이와 숙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또 왕간은 "사람이 가난에 허덕이면서 몸을 얼리거나 굶긴다면 이 또한 근본을 잃은 것이며, 학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학문을 하려면 먼저 자신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물질적 생활 조건을 구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학문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생명 활동을 보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행위는 삶을 도모하는 일(장사하고 농사지으며 노동하는 일을 포괄하여)에서부터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왕간의 ‘안신설’은 감성 생명을 아끼고 사랑할 것을 주장하면서 전통적으로 ‘사생취의’의 인물로 받들어 오던 백이·숙제를 비판하였다. 이 때문에 도덕 이상주의의 입장에 선 황종희는 왕간의 이러한 사상이 구차하게 위난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에게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비판하였다. - P521
이처럼 감성 생명을 본위로 하는 왕간의 사상은 가치관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왕간의 이러한 사상에서 ‘보신’은 양지의 기본적인 의미이다. 그렇다면 양지는 사람의 생명 충동과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왕간은 양지의 ‘보신’ 의식 속에서 ‘남을 사랑하는’ 윤리를 파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왕간은 묵자와 유사한 논증 방식을 운용하였다. 다시 말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까닭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 남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절대적인 도덕 명령도 아니며, 사회적 화합을 이루려는 것도 아니다. 오직 ‘보신’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다. 이러한 윤리관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전통적인 유가 윤리와 다르다.
이러한 이론은 ‘다른 사람과 내가 서로 감응한다’는 이론을 전제한다. 즉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내가 나만을 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하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그렇게 보복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명철보신’의 윤리학은 비록 최종 목표가 ‘보신’에 있을지라도 결코 이로부터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파생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러한 이론으로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서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그를 사랑하고, 남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늘 그를 믿는다. 이것이 감응의 도리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특별히 그 사람이 인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인자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특별히 그 사람이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믿을 수 없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타인과 내가 서로 감응하는 관계 속에서 볼 때, 타인의 부도덕한 행위는 내가 도덕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헤아리는’ 것에서 출발하여 ‘스스로를 반성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으로서, 여전히 우리를 자아의 수양에 힘쓰도록 이끌어 갈 수 있다. 이것은 ‘오직 곱자만을 바로잡아 나갈 뿐, 네모에서 추구하지 않는다’는 ‘회남 격물’의 해석에서 제공해 준 일종의 상호 감응성의 이론 기초였다.
일반적인 도덕 규범과 도덕 수양에 관해 말하자면, 왕간은 결코 유가의 윤리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평민 노동자 출신이었으며 노동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고 생명을 아끼며 몸을 사랑하는 평민들의 윤리 관념이 그대로 녹아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유가 윤리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 묵자와 비슷한 방법을 채용함으로써 자각적이었든 자각적이지 못했든 간에 공리적인 의미의 가치 목표가 보태졌을 따름이다. 이러한 측면들이 그의 윤리관으로 하여금 인생과 가치 체계 속에서 개체적인 감성 생명이 지니는 의미를 돌출시키게 하였다. 의심할 여지 없이, 왕간의 이러한 사상은 ‘세속화된 유가 윤리’의 특질에 한층 더 다가가 있다. 그러므로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왕간의 이러한 사상을 리학의 ‘이단’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정밀하고 빼어난 문화였던 리학의 가치 체계가 민간 문화 속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전돼 나온 형태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 사상은 ‘세속화된 유가 윤리’라는 의미에서 긍정되어야 마땅하다. - P522
문화적 시야를 한 걸음 더 확대해 나가자면, 리학은 실제로 11세기 이후 중국의 사상 체계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 동아시아 각국(조선·월남·일본)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거나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상 체계였다. 송명리학이 근세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공동으로 체현된 사상이었다고 말하더라도 그다지 과장된 주장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리학 체계가 지닌 모든 논리적 연결고리와 실현 가능성을 펼쳐 보이려면,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리학을 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점은 지면과 학식의 한계 때문에, 이 책에서는 그러한 임무를 아직 완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겨우 명대 리학 속에 퇴계 이황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는 데 그쳤다. 독자들이 조선 시대 주자학의 발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동아시아 문명의 관점에서 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일보한 연구를 기다려야 한다.
송명리학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송명리학은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연구돼야 한다. 그리고 송명리학은 여전히 현대의 중국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화 전통이며, 모종의 방식으로 어느 정도 우리의 생존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분석적으로 계승해야 함은 물론이고 시대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현대화의 조류와 과정 속에서도, "주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명은 오히려 새롭다"는 옛 경전의 말처럼, 중국 문화가 여전히 인정받고 끊임없이 풍부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P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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