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벨라 안드레(아마존에서 직접 E-book 형태로 로맨스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책은 빨리빨리 나와요. 내 아이디어에 대해 먼저 에이전시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난 독자가 원하는 책을 바로 쓸 수 있습니다. 나는 곧 나의 독자인 셈이죠." "나는 곧 나의 독자"라는 말은 "나는 곧 나의 유권자"라는 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말은 진정한 정치가, 즉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나름의 비전으로 유권자를 한발 앞서 가는 정치가의 소멸을 의미한다. 정치적인 시간으로서의 미래는 사라져간다. - P139

"부단한 미디어의 관찰 때문에, 우리[정치가들]에게는 도발적이고 인기 없는 주제나 입장에 관해 비공개 석상에서 터놓고 토론할 자유도 없어졌어요. 그런 얘기를 했다가는 반드시 누가 그걸 언론에 알릴 거라고 보면 됩니다." - P141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경탄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정신의 매체는 고요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고요를 파괴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매체의 가산적 특징은 정신의 걸음걸이와는 거리가 멀다. - P143

20세기 초에 독일의 말 한 마리가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계산 능력이 있다는 이 말은 "영리한 한스"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간단한 계산 문제에 한스는 발굽이나 머리로 정확한 답을 제시했다. "3 더하기 5는 몇?" 이라고 물으면 녀석은 발굽을 여덟 번 두드렸다. 이 신기한 사태를 해명하기 위해 과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까지 동원되었으며, 여기에는 철학자도 한 명 참여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이 말에게 계산 능력이 없음을 발견했다. 다만 녀석은 마주하고 있는 인간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에 나타나는 아주 미세한 뉘앙스를 해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정적인 발굽 소리 직전에 청중이 무의식적으로 긴장된 자세가 되는 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녀석은 이러한 긴장 상태의 느낌을 따라 발굽 두드리기를 멈추었고, 그런 식으로 항상 올바른 답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 P144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과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점차 진짜 인간과의 직접적인 접촉, 실재와의 접촉 자체를 피하게 된다. 디지털 매체로 인해 진짜 상대방을 마주하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디지털 매체는 실재를 저항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점점 몸과 얼굴을 잃어버린다. 디지털은 라캉이 말한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의 삼원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조한다. 디지털은 실재계를 해체하고 모든 것을 상상계로 만든다. 스마트폰은 유아기 이후에 거울 단계를 새롭게 재생시키는 디지털 거울로 기능한다. 스마트폰은 내가 나를 품는 나르시시즘적 공간, 상상적인 것의 영역을 열어준다. 스마트폰을 통해 말을 건네오는 것은 타자가 아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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