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를 행동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실은 커뮤니케이션학이다. PR학이다. ‘설득‘ 기술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넛지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PR · 광고 전문가들은 행동경제학에 대해 코웃음칠지도 모르겠다. 무슨 옛날 이야기를 그렇게 새로운 것처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을 비웃을 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선 오래된 이야기일망정, 넛지의 이치를 정부 · 공공기관 · 시민단체 등의 정책에 고려하는 건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의 정부부처 · 지방자치단체 · 공공기관들이 애용하는 플래카드는 노골적인 계몽과 훈계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강조한 텍사스 주의 과오를 교정할 뜻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오늘날 ‘계몽의 종언‘이 외쳐지고 있는데, 그건 과연 진실일까? 누구에게든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면 "감히 누굴 가르치는 거냐?"고 반발하지만, 교묘하게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을 취해 주입시키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즉, 문제는 계몽의 포장술이다. 그런데 포장에는 돈이 많이 든다. 버네이스의 이벤트 연출 묘기는 모두 다 대기업의 금전적 물량 공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금력과 권력을 가진 쪽의 포장술은 갈수록 세련되어가는 반면, 그걸 갖지 못한 일부 개혁 · 진보주의자들은 계몽에 들러붙은 엘리트주의 딱지를 떼면서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어내기 위해 독설과 풍자 위주로 카타르시스 효과만 주는 담돈에 집착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계몽과 설득이 처해 있는 딜레마다. - P266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인류학적인 문헌을 통해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이렇게 말한다. "150이라는 숫자는 진정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개인적인 숫자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관계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는 그런 관계이다.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 초대받지 않은 술자리에 동석해도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 숫자이다." 이 150이라는 수를 가리켜 ‘던바의 수‘라고 한다.
저널리스트 맬컴 글래드웰은 잠시, 누군가가 죽었을 때 당신을 진정으로 망연자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전부 기록해보자고 제안한다. 대다수 사람에게서 나온 평균적인 대답은 12명 정도였다. 심리학자들은 이 12명 정도의 이름들을 ‘공감 집단‘이라고 불렀다. 글래드웰은 이 집단의 크기가 더 커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그런 목록이 두 배로 길어져서 30명쯤 된다면 결과적으로 그 목록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에게 절반의 시간만을 할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과 여전히 절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려면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단지 시간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정서적인 에너지 역시 투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깊이 배려하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어떤 특정한 지점, 즉 10명에서 15명 선에서 우리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는 친화동기와 친애동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도 있다. 친화동기는 타인과 어울려 지내고자 하는 동조적이고 의존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로 남들에게 배척당할까 불안해하는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친화동기가 강한 사람들은 남들과 잘 어울려 지내긴 하지만 그것이 깊은 우정이나 사랑을 지향하는 특성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적으로 불가능해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반면 친애동기가 높은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 소수의 사람들과 친밀한 교분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 관계가 보다 안정적이고 깊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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