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이 전환될 때 정치적 차원에서 가장 큰 비용과 고통은 정적의 극렬한 반대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추진한 ‘뉴딜 정책‘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안철수에게 루스벨트의 현란한 정치력은 없다. 물론 다른 정치인 대선 후보들 또한 그런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니 안철수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안철수에겐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독보적인 강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분노하는 강남 좌파‘라는 장점이다.
"안철수 원장이 지난해 국회에서 강연을 했다. 끝날 때쯤 미국 실리콘밸리 얘기를 하다 우리 벤처업계엔 사기꾼이 많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사기꾼들은 다 사형시켜야 한다고 했다. 안철수 교수 하면 좋은 사람이 아닌가? 컴퓨터 백신도 만들고 정의로운 사람인데, 또 굉장히 분노와 증오가 많은 것 같았다."
2012년 4월 28일 새누리당 의원 정몽준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다른 정치인들이 "사형" 운운했더라면 논란이 됐겠지만, 안철수는 다르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별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그의 개혁 의지가 확고 · 단호하다는 증거로 여겨질 것이다.
안철수는 ‘분노하는 강남 좌파‘이기 때문이다. 이 ‘강남 좌파‘라는 말이 적잖은 오해를 낳으니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안철수가 왜 좌파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안철수는 "최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상류계급"이면서도 "계층적 기반은 99퍼센트에 속하는 중소기업가, 자영업자, 대학생, 노동자, 비정규직, 서민"이기에, 상대적 의미로 이해하면 펄쩍 뛸 일은 아니다. - P195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강남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것들은 ‘합리적 주장‘, ‘상대에 대한 배려‘, ‘다양성의 인정‘, ‘닮고 싶은 매력‘, ‘촌스럽지 않음‘, ‘글로벌 경쟁력‘ 등이라면서, 이를 안철수의 화려한 스펙, 경제적 여유,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화법 등과 연결 지었다. "왜 대중은 이렇게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강남성을 가진 엘리트들에게 열광할까요? 우선 시대가 변했어요. 지금 이 시대 시민의 정체성은 ‘소비자‘로 규정됩니다. 이들은 세상사를 다른 무엇보다도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살핍니다." - P196

"20세기는 카리스마를 갖고 외향적 성격에, 목소리 큰 사람이 특정한 위치에 올랐어요. 그 위치에는 인사권과 돈이 부여됐고 그것을 휘둘러서 리더십을 발휘했어요. 21세기는 일반 대중이 리더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아요. 탈권위주의 시대가 되면서 지금은 대중이 리더에게 리더십을 부여하지요. 게다가 대중이 리더에게 원하고 갈망하는 자질이 더 중요해요. 현재 대중이 원하는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그리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에요.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해요."
안철수의 동지인 박경철은 "우리 사회는 선배 세대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힘든 시기를 넘어왔고 이 시대는 대중을 이끌고 ‘나를 따르라‘를 외치는 리더십이 가장 효율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나와 함께‘라고 말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라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의 생각과 후배 세대들의 생각이 큰 괴리를 보이는 지점이고 쉽게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다. 기성세대의 리더십이 이끌고 당기는 계몽주의적 리더십이었다면 앞으로 필요한 리더십은 밀어주고 어깨를 내어주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는 리더십이다." - P200

가혹한 현실을 피하고 유쾌한 환상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말만 앞서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주로 증오의 담론을 구사한다. 증오의 담론은 면책 심리와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솔 알린스키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은 채 ‘말로만 하는 급진주의자‘들을 가장 경계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로만 하는 구두선口頭禪식 급진주의자란 낡아버린 옛 단어나 구호를 사용하고 경찰을 ‘돼지‘라든지 ‘백인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혹은 ‘쌍놈‘이라고 부르는 등의 방식으로 오히려 자신을 정형화시킴으로써 남들이 ‘아, 뭐 쟤는 그냥 저런 애‘라고 하는 말로 대응하고는 즉시 돌아서게끔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다.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젊은 활동가들의 실패는 처참했다. 의사소통은 청중의 경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타인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해만 있었어도……." - P211

2011년 1월에 출간된 『정치의 발견』에서 박상훈은 알린스키론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한다. 가장 인상적인 한 대목을 소개한다. 박상훈은 "일부 진보파들이 보이는 가장 나쁜 습속은 ‘분노는 나의 힘!‘을 외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했다는 식의 행태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화를 내고 세상을 탓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대안을 만들고 꾸준히 실천하는 노력은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끊임없이 화를 낼 이유를 찾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알린스키의 말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한때 나는 조직가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 자질은 불의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분노할 줄 아는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다. 이제 나는 분노가 아니라 상상력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조직가들이 계속 조직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주는 힘의 연료일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수단과 활동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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