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레-노이만은 우리 인간에겐 눈(시각), 귀(소리), 혀(맛), 코(냄새), 피부(접촉) 이외에 ‘제6의 감각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건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회적 분위기의 모든 이동을 감지하는 안테나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인즉슨, "환경을 관찰하는 데 소모되는 노력은 확실히 누구로부터 배척받거나 혼자 남게 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노엘레-노이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소외당하는 것을 영원히 두려워하면서 산다. 그리고 어떤 의견이 커지고 어떤 의견이 줄어드는지를 알기 위해 환경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만약 자기의 생각이 지배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고, 자신의 견해가 지지 기반을 잃고 있다고 판단되면 의견을 감추고 조용해지게 된다. 한 집단은 자신 있게 의견을 표출하는 반면 다른 집단은 입을 다물기 때문에 전자는 공적으로 강하게 나타나고 후자는 숫자보다 약해지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거나 침묵하게 만들며, 나선형의 과정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노엘레-노이만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립의 두려움‘때문에 ‘침묵의 소용돌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침묵의 소용돌이‘ 또는 ‘침묵의 나선‘은 사람들이 소수에 속한다고 생각할 때 그들의 의견을 감추어야 한다고 느끼는 점차적인 압력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자기의 의견이 확산되고 다른 사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따고 느끼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그 의견을 말할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의견이 터전을 잃고 있다고 느끼는 개인들은 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할 것이다." - P251

역사적 시련을 많이 겪은 한국인은 적어도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와 그에 따라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실정에 더 잘 맞는 이론은 아닐까? 침묵의 나선 이론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여론이란 것이 허깨비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지는 않게 될 것이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우리의 견해 표명이란 것이 늘 주변을 살피는 가운데 나오는 것이라면 여론이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달라지는 ‘티핑포인트‘가 작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 P254

공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이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해 공공적 이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시간과 여유가 없고 부유한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를 외치면서 자신의 삶을 좀더 유쾌하게 보내는 데에만 몰두해 있다. 그 중간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심리적인 불안 또는 탐욕의 포로가 되어 자신을 양 극단의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가려고 애를 쓴다.
그런 상황에서 공공적 이슈에 관심을 갖자는 외침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곳이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피곤하게 사는 한국인들의 기존 삶은 이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거나 정점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염은 무서운 것이다. 냉소주의와 패배주의의 전염이 위력적이긴 하지만, 그 반대의 전염도 가능하다.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전염의 무서운 가능성을 단순 산술로 평가해선 안 된다. - P260

사람들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자신이 계몽이나 훈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하라고 하면 더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는 청개구리 심보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
텍사스 주 당국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인기 풋볼팀인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선수들을 참여시켜 그들이 쓰레기를 줍고 맨손으로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며 "텍사스를 더럽히지 마!Don‘t mess with Texas!"라고 으르렁대는 텔레비전 광고를 제작했다. 캠페인 1년 만에 쓰레기는 29퍼센트나 줄었고, 6년 후에는 72퍼센트나 감소했다. 텍사스 주민의 95퍼센트가 이 표어를 알고 있으며, 2006년에는 이 표어가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표어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뉴욕 시 메디슨 거리를 행진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집필한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2008)에 나오는 이야기다.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다. 세일러와 선스타인은 이 단어를 격상시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정의를 새로 내리고, 그들이 역설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간판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좌파적인 것도 우파적인 것도 아니며, 민주당적인 것도 공화당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넛지는 초당파적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실천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넛지는 구체적으로 선택 설계에 적용될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선택 설계자‘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다. 투표 용지를 디자인하는 사람, 환자에게 선택 가능한 다양한 치료법을 설명해줘야 하는 의사, 직원들이 회사의 의료보험 플랜에 등록할 때 서류 양식을 만드는 사람, 자녀에게 선택 가능한 교육 방식들을 설명해주는 부모,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세일즈맨 등이 바로 선택 설계자들이다.
세일러와 선스타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작은 요소라 해도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 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 P263

버네이스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었다. "때때로 수백만 명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존경 받는 권위자를 내세우거나 자신의 견해에 대한 논리적 틀을 설명하고 전통을 고려하여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도록 하는 것이 더 쉽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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