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을 때 <손석희의 미국탐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당시 전직 방송기자 출신인 시민운동가를 만났는데, ‘왜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기자는 양쪽 입장의 균형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한쪽의 입장을 견지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는 것은 내가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다.‘ 저 역시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방송인으로 있는 한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 P91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한국 사회에서 ‘신념‘이나 ‘확신‘이란 말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도 문제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절엔 확신은 물론 ‘광신‘마저 투쟁의 동력으로 필요했고 긍정 평가할 수 있었겠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게다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선, 그 어느 쪽을 막론하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나의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잔인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 P104

원래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그렇듯이 가혹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평가, 아니 비판은 이른바 위선에 대한 혐오가 지나친 나머지 나타나는 ‘반위선 근본주의‘ 구호라 할 수 있는 "성인이 아니면 입 닥쳐Saint or shut up"를 연상케 한다. "투사가 되어라, 아니면 비판받아 마땅하다"라는 식의 이분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투사도 변절하길 밥 먹듯이 하는 세상에서 그런 요구는 가혹한 정도를 넘어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 P139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박구용도 「변절의 흑백논리」라는 『경향신문』(2013년 6월 1일) 칼럼에서 "마음이 변해서 떠난 것이라면 배신이 아니다. 지나간 사랑을 부인한 것도 아니라면 모욕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종편이 현실이 되었으니 배척하는 것보다는 수준을 높이는게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명백한 현실 왜곡이자 이상의 교란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그가 말하는 현실은 모두가 인정해야 할 불변의 과학적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비추어 자의적으로 구성한 그의 세계일 뿐이다. 그처럼 야만적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현실론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팔았고 이광수가 문학을 팔았다. 그리고 또 흑과 백을 뒤집으며 수많은 변절자들이 흑백논리의 저편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나도 끝없이 변절하지만 그 변절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기는 못 친다." - P146

"무엇을 얻겠다고 하는 순간 오히려 잃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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