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린스키는 1971년에 출간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문제가 극단적으로 나뉘어야만 사람들은 행동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100퍼센트 천사의 편에 있으며 그 반대는 100퍼센트 악마의 편에 있다고 확신할 때 행동할 것이다. 조직가는 문제들이 이 정도로 양극화되기 전까지는 어떤 행동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조직가라면 자신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한 부분은 행동의 장에 있으며, 그는 문제를 100대 0으로 양분해서 자신의 힘을 투쟁에 쏟아붓도록 힘을 보탠다. 한편 그의 다른 부분은 협상의 시간이 되면 이는 사실상 단지 10퍼센트의 차이일 뿐이라고 하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양분된 두 부분은 서로 어려움 없이 공존해야만 한다. 잘 체계화된 사람만이 스스로 분열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로 뭉쳐서 살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조긱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알린스키를 가장 먼저 소개한 아시아교육역구원 원장 오재식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사람은 다 엇비슷하다. 나빠봐야 51퍼센트 정도일 것이다. 반대로 좋아봐야 역시 51퍼센트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전략적 차원에서 상대와 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상대가 100퍼센트 나쁘고 내가 100퍼센트 좋아야 이기는 것이다. 이것을 종교화하고 신념화해야만 전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상황이 끝나고 여러 가치와 기준들이 제자리를 잡아야 하는 때에도 자신의 전투 행위를 설명할 때는 여전히 전략에 사로잡힌 종교를 내세워야 하는 것이 관행이다. 여기에 알린스키가 말하는 혁명적인 사고와 자세 변화가 요구되는 대목이 있다. 100퍼센트 나빴던 사람을 51퍼센트로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배했던 이념 체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 P73

개그맨 이경규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나는 진보수다"라고 했다. ‘진보‘와 ‘보수‘를 합친 ‘진보수‘라는 뜻이다. 개그맨 김제동은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뭔지 모른다"며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분파다"라고 말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좌파냐 우파냐 굳이 묻는다면 난 ‘내 멋대로 살고파‘다"라고 했다. 개그로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면 이 세 사람의 편 가르기 조롱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우리가 취해야 할 진정한 시대정신은 아닐까? - P79

실천적 좌파 지식인인 사르트르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왜 소련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원칙은 ‘지금, 여기now and here‘이어야 하는바, 자신의 삶의 현장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에 이의 문제들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소련에 대한 비판은 자신이 아니어도 넘쳐나는 데다가 자신까지 소련을 비판하면 그것이 "따라서 자본주의가 그래도 나은 것"이라는 식으로 현실을 정당화하고 현실 문제를 외면하는 데 악용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 P89

앞서 안철수와 관련해 "이과 모범생"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좋은 의미로 쓴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모범생이었건 아니었건 이과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는 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한결같이 내세우는 박근혜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이과 출신‘이라는 것인데,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주장이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53년 전 영국의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C. P. 스노우는 인문 ·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과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문제가 현대 서구 문명의 중대한 장애물이자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두 문화‘의 폐해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이과‘ 편 가르기를 하는 한국에서 양상을 달리해 나타나고 있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지금 한국 고등학교에서 ‘문과-이과‘ 구분이 낳는 폐해는 매우 심각해 구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문제를 극복해보겠다고 ‘융합‘을 외치곤 있지만, 그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깊이 들어가보라. 정말 소통이 잘 안된다. 정치나 이념 문제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문과 · 이과 모두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에 길들어 각각 그 내부에서도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문과 출신들이 훨씬 더 심각하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사실상 문과 출신들이 지배해왔는데, 이게 불필요한 이념 투쟁을 격렬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야권에서 누군가가 ‘실용주의‘좀 하자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변절‘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그 벌떼 속에 문과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론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경제향우 정치향좌經濟向右 政治向左‘ 실용주의 노선을 관철시켜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 대국으로 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이과 출신이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P91

셋째, 장덕진이 유권자들의 가치관을 물질주의와 탈물질주의로 나눈 것에도 함정이 있는 듯하다. 소득이 낮을수록 물질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반면, 이미 물질이 충족된 사람들은 "인권, 민주주의, 언론, 자유, 환경 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에 관심이 있는 여유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좌파층이 두터워지는 이유기도 하다. 역설 같지만, 날이 갈수록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돼가고 있는 가운데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물질주의야말로 참된 진보적 가치가 아닐까?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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