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수사학은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중점을 둔다. 흥미로운 점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모두 수사학을 궤변이라고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것,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혹은 어느 지역에서나 타당한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지향했던 논리의 궁극적 목적은 대화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지 않았을까? 불행히도 논리적인 논증만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오히려 상대방은 논리의 힘으로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간과했던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공자가 위대했던 진정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논리를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듣는 상대방에 맞추어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의 내면까지 읽어낼 수 있는 노력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205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며 합당한 논의를 설명하려는 지식인은 애증을 가진 군주를 살핀 뒤에 유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란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한비자』「세난」
(...) 용을 길들이려는 사람은 용의 목에 있는 거꾸로 된 비늘, 즉 역린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역린을 자극받는 순간, 용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타고 있는 사람을 물어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 한비자의 통찰은 매우 단순하다. 아무리 논리적인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수사학적 노력이 실패하면 그 주장은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이나 한비자의 군주들에게만 역린이 있는 것일까?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역린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반성하고 체계화하는 일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타자를 설득하는 데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정당화된 생각만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움직이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적 정서, 즉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읽을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옳다고 인정할 수는 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타당한 주장, 즉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움직이도록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가 그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상대방의 역린을 읽을 수 있는 수사학적 감수성이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는 법이다. - P206

논리적 사유와 관련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성, 즉 근거를 찾고 제시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 즉 타자라는 점이다. 만약 타자가 나의 주장을 듣자마자 그것을 즉각 수용한다면, 나는 근거들을 찾아서 제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부터 이성의 능력을 강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기보다 타자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논리적 사유란 타자를 폭력이 아닌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설득하려는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논리적 사유는 타자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 사유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논리학이 발달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폴리스는 제한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던 곳, 따라서 폭력이 아니라 토론과 설득의 정신을 지향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 P213

유연한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생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기성적인 것 그리고 집중에 반대되는 방심, 요약하자면 자유스러운 활동성에 대립되는 주동주의, 이것이 결국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고 하는 결점이다.
- 베르그송,『웃음』 - P219

복제에서 빠져 있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우리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 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일회적 산물을 대량 제조된 산물로 대치시킨다.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이 두 과정, 즉 복제품의 대량 생산과 복제품의 현재화는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것을 마구 뒤흔들어놓았다.
- 발터 벤야민,「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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