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사회는 변증법과 해석학에 작별을 고한다. 변증법의 바탕은 부정성에 있다. 그리하여 헤겔의 "정신Geist"은 부정적인 것에 등을 돌리지 않고, 부정적인 것을 감당하고 그 속에서 자기를 보존한다. 부정성은 "정신의 생명"에 양분을 준다. 자기 속의 타자는 부정의 긴장을 촉발하며, 이로써 정신의 활력을 유지한다. 헤겔에 따르면 정신이 "힘"이 되는 것은 오직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곁에 머무를 때"뿐이다. 이러한 머무름이야말로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역전시키는 마법"이다. 반면 오직 긍정적인 것 사이에서만 뛰어다니는 자는 정신이 없다. 정신은 느리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며 그것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투명성의 시스템은 스스로를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부정성을 폐기 처분한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보다 긍정성 속에서 질주하는 것이다. - P20
긍정사회는 부정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대하는 법, 그러한 감정을 형식에 담는 법을 잊어버린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깊이, 위대함, 강인함은 바로 부정적인 것에 머무름으로써 나온다. 인간 정신도 산고의 결과이다. "영혼에 강인함을 심어주는 저 불행에 빠진 영혼의 긴장, [.......] 불행을 견디고, 버티고, 해석하고, 이용하는 영혼의 예민함과 용기, 그리고 예로부터 비밀, 가면, 정신, 계략, 위대함으로부터 영혼에 주어져온 것ㅡ그것을 영혼은 괴로움 속에서, 엄청난 괴로움의 훈육 속에서 받은 것이 아니었던가?" 긍정사회는 인간 영혼을 완전히 새로 조직화하려는 참이다. 영혼의 긍정화 흐름 속에서 사랑 역시 안락한 감정들, 복잡하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흥분들의 평면적인 배합으로 전락한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 예찬』에서 싱글 거래소 미틱Meetic의 슬로건에 주의를 환기한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하세요!" 또는 "괴로움 없이 사랑하기, 참 쉬워요!" 사랑은 길들여지고 긍정화되어 소비와 안락의 상투형이 된다.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아야 한다. 고뇌와 정열은 부정성의 형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부정성 없는 향락에 밀려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진, 피로, 우울과 같이 긍정성의 과잉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장애에 의해 대체된다. - P21
정치는 전략적 행위이다. 이미 이 이유 때문에라도 비밀스러운 영역은 정치와 잘 어울린다. 전면적인 투명성은 정치를 마비시킨다. 카를 슈미트는 이렇게 말한다. "공개주의 원칙과 특수한 적대 관계에 있는 것은 [......] 기밀, 즉 정치기술적 비밀이 모든 정치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관념이다. 사유재산과 경쟁에 바탕을 둔 경제활동에서 사업과 경영 상의 비밀이 필수적인 것만큼이나 정치기술적 비밀도 절대주의의 필수 요소이다." - P23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의 형식은 ‘좋아요‘이다. 페이스북이 ‘싫어요‘ 버튼을 도입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긍정사회는 모든 종류의 부정성을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오직 정보 교환의 양과 속도로만 측정된다. 커뮤니케이션의 대량화는 경제적 가치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부정적인 판정은 커뮤니케이션을 손상시킨다. ‘좋아요‘가 ‘싫어요‘보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거부에 담긴 부정성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다. - P26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 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정보의 증가와 축적만으로 진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는 방향, 즉 의미가 없다. 진리의 부정성이 결여됨으로 인해 긍정적인 것이 마구 증식하고 다량화된다. 과다 정보와 과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진리의 결핍, 존재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전체의 근본적인 불명료함을 제거하지 못한다. 더 많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불명료함은 오히려 더욱 첨예화된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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