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불행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란 감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성이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아니면 자식이든 간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그도 나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물론 겉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 이것이 사랑이란 감정을 가졌을 때 우리가 소망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태는 삶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사랑이 낳을 수 있는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 이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 자체를 신의 저주라도 되는 양 후회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낳을 수 있는 더 큰 불행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것이 상대방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을 선사하게 될 수도 있다. 장자라는 철학자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사랑이 낳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에 직면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 먼저 ‘바닷새 이야기‘라고 불리는 다음 에피소드를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 - 『장자』「지락」 - P190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그가 누구이며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알려고 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타자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숙고해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타자란 우선 나와는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는 바로 타자였다. 어떻게 하면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의 속내를 독해할 수 있을까? 장자의 대답은 ‘허‘나 ‘망‘이란 표현에 응축되어 있다. 여기서 ‘허‘가 비운다는 뜻이면, ‘망‘은 잊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타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비우거나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야 우리는 노나라 임금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바닷새를 놓아주지 않으면서 바닷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나라 임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 바닷새가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을 잊어야만 했다. 오직 그럴 때에만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가 던지는 암호들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 P193
사랑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타자를 파괴한다는 것! 이것보다 비극적인 상황이 어디에 있겠는가? 타자에 대한 선입견은 나와 타자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는 것, 그래서 타자와 연결되기 위해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타자와의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 자신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즉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비우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사랑하는 타자가 나의 수줍은 손을 잡아주기를. 아직도 2,000년 전 중국 대륙에 살았던 장자라는 철학자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타자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제외한 일체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오직 비어 있는 잔만이 술이 가득 차기를 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95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대가는 분명하다. 사랑이 주는 기쁨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 P197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해탈하기 이전의 우리 마음, 즉 ‘요동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내면, 즉 기억의식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열정적으로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반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명의 남녀가 있다고 하자. 불가항력적인 이별은 두 사람 내면에 모두 지울 수 없는 결여의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인간은 금지된 것과 결여된 것을 욕망하는 법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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