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태어날 때부터 신경이 예민한 아이는 버림을 받거나 낯선 사람의 손에 맡겨질 때 평범한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아이의 불안 수준을 높인다. 당신은 가끔 자신이 어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작고 무력하고 혼자 생존할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는 어느 정도의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어른은 외딴 섬에서 혼자 몇십년간 생존할 수도 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과거이고, 지금은 살아남았고, 이제 삶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은 불안을 줄여줄 것이다. 그러나 불안이 당신의 몸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새로운 경험이 신경 시스템에 파고들어 내면을 변화시켜야만 불안을 없앨 수 있다. 지식은 당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경험만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직장에서 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 실행으로 사무실 동료가 큰 소리로 통화할 때 방해가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자 머릿속에 온갖 시나리오가 펼쳐지더군요. 동료가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서 상사에게 달려가 나를 다른 직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모습도 상상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내내 말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동료가 통화를 멈출 때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고 와서 심호흡을 하고 벼르고 벼르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서 숨을 쉬기도 힘들더군요.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나는 떨려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동료가 입을 열었습니다. "더 빨리 얘기해 주지 그랬어. 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줘서 고마워"라고. 우리는 함께 해결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이 일은 내게 매우 긍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그 동료를 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고, 그 역시 그런 것 같았어요. 우리는 지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도 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불을 켜는 게 내게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 리너, 43세
당신의 행동 규칙 중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고 제한하는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은 엄격한 규칙으로 자기 자신을 옭아매지 않고, 더 많은 선택권을 갖고,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유를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 P74
분노의 내면에는 현실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숨겨져 있다. 분노는 장애물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된 강력한 에너지다. 당신은 그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변화되기를 원한다.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면, 의식하든 못 하든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울 때 문제가 발생한다. 배우자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화가 나면, 계속 그 점을 지적하고 고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배우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두 사람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성격의 어떤 부분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연로한 부모님에게 계속 화를 내고 있다면, 그 분노의 내면에는 당신의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어릴 때 받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분노의 감정 밑에 부모님이 달라지면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 P142
우리의 삶은 불가능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바람을 인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실제의 삶이 바라는 삶과 큰 차이가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당신의 바람은 깊은 슬픔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상처를 깊이 감춰둔 채 무감각하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슬픔을 직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도덕적인 비판을 할 때 당신은 사실 자신의 내면이나 외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바람을 인식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바람이 성취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끼고 성취될 때 기쁨을 느낄 것이다. - P147
어떤 사람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직시하는 것보다 분노의 감정을 부모에게 돌리는 걸 더 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꿀 수 없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평생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분노는 슬픔으로 바뀐다. 슬픔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슬픔은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다. 슬픔의 감정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사랑과 배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애정과 친절을 베풀지 못한다. 당신이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사람들을 곁으로 불러들이지만, 분노는 멀어지게 한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대처할 수 있어야 해"라는 자기 판단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대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내면에 슬픔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나를 더 지지해줬어야 해"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더 많이 도와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로, 아니면 더 간단하게 "나는 네가 도와주기를 기다렸어"라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 나는 독자들이 도덕적인 비판을 할 때 "해야 한다(should)"라는 말 대신 "했으면 좋을 텐데(wish)"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바란다. 그런 표현이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깊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평소에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판단하는 말 대신 "한다면 좋을 텐데" 또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아쉽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표현이 자아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여전히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민한 신경을 가진 당신에게는 분노의 에너지보다 슬픔의 감정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P148
자신에게 병이 생기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거나,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거라고 자책한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병이 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더 건강해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분명히 죽음이 다가온다. 자신의 무기력함과 삶의 불확실성을 직시할 때, 지나친 죄책감으로 고통당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집안에 갈등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질을 갖추지 못한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야 더 안전하게 느낀다. 그들은 착하고 공손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대안은 부모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두려운 일이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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