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처럼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사회에서는 신뢰에서 통제로의 시스템적 전환이 일어난다. 투명사회는 신뢰사회가 아니라 통제사회다. - P5
전면적 커뮤니케이션과 전면적 네트워크화의 흐름 속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 튀는 견해를 밝히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매끈하게 다듬고 평준화하는 작용을 하여, 결국 획일화를 초래하고 이질성을 제거한다. 투명성은 순응에 대한 강압을 낳고 이로써 지배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 P6
커뮤니케이션은 같은 것끼리 반응할 때, 동일자의 연쇄반응이 일어날 때 최대 속도에 도달한다.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 타자의 저항은 매끄러운 동일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지연시킨다. 투명성은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된다. 바로 이 점에 투명사회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있다. "획일화를 표현하는 새 단어 : 투명성." - P15
인간의 영혼은 분명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영혼의 내부를 훤히 비춘다면, 영혼은 불타버릴 것이며 특별한 종류의 소진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직 기계만이 투명하다. 즉흥성과 우발성, 자유처럼 삶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들은 투명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훔볼트도 언어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 가운데에는 어떤 이성으로도 그 현상 이전의 상태에서 원인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 있다. [......]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의 가능성을 언어에서 배제한다면, 이는 언어의 발생과 변화에 관한 역사적 진실에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 P16
잘 알려진 대로, 정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직관은 주어진 정보를 초월하여 자기 고유의 논리를 따라간다. 오늘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정보의 더미 속에서 고차적인 판단 능력은 위축되어간다. 종종 더 적은 지식과 정보가 더 많은 작용을 한다. 생략과 망각의 부정성이 생산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일은 드물지 않다. 투명사회는 정보의 공백도 시각의 공백도 용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유도 영감도 어떤 빈자리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행복Gluck이란 단어는 빈틈에서 유래한 것이다. 행복은 중고지 독일어에서는 gelucke였다. 빈틈의 부정성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행복이 없는 사회이다. 시각적 빈틈이 없는 사랑은 포르노이다. 그리고 지식의 빈틈이 없다면 사유는 재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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