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으로서의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들로부터 아토포스(atopos, 부정의 접두어 a와 ‘장소‘를 뜻하는 topos가 결합된 말이다.)라고 불렸다. 내가 욕망하는 타인은 장소가 없다. 그는 어떤 비교로부터도 벗어난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타자의 아토포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타자는 아토포스로서 말을 전율시킨다. 우리는 이 타자를 말할 수도, 이 타자에 대해서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수식어는 잘못된 것이고, 고통스럽고,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 [……]" 욕망의 대상으로서 소크라테스는 비교할 수 없고 단독적이다. 단독성은 진정성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진정성은 비교 가능성을 전제한다. 진정한 사람은 타인들과 다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토포스, 즉 비교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타인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타인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과도 다르다. - P36
신자유주의적 생산 전략으로서 진정성은 상품화할 수 있는 차이들을 산출한다. 이를 통해 진정성은 자신을 물질화하는 상품들의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개인들은 자신의 진정성을 무엇보다 소비를 통해 표현한다. 진정성의 명령은 자율적인 주권자로서의 개인을 형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명령은 상업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다. 진정성의 명령은 나르시시즘적인 강제를 낳는다. 나르시시즘은 병적인 것과는 무관한, 건강한 자기애가 아니다. 건강한 자기애는 타자에 대한 사랑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나르시시즘은 타자를 보지 못한다. 타자는 에고가 이 타자 안에서 자신을 알아볼 때까지 계속 왜곡된다. 나르시시즘적인 주체는 세계를 오로지 자신의 음영으로만 지각한다. 그 불행한 결과가 타인의 소멸이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자신이 용해되어 불명료해진다. 자아는 자신 안에서 익사한다. 이에 반해 안정된 자아는 타인에 직면할 때 비로소 형성된다. 이와 달리 과도하고 나르시시즘적인 자기연관은 공허감을 낳는다. - P37
오늘날에는 성적 에너지가 무엇보다도 자아에 투자된다. 자아 리비도의 나르시시즘적인 축적은 대상 리비도, 즉 대상을 점유하는 리비도의 감소를 초래한다. 대상 리비도는 대상에 대한 결속을 낳으며, 그 대가로 자아를 안정화한다. 자아 리비도의 나르시시즘적인 누적은 병을 초래한다. 이는 두려움, 수치감, 죄의식, 공허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낳는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매우 강력한 과정이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철회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이 경우 나르시시즘적으로 변한 리비도는 대상으로 회귀하는 길을 찾을 수 없고, 이렇게 리비도의 가동성이 방해받으면 병이 생겨난다. 나르시시즘적 리비도의 누적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바뀌는 것 같다." 어떤 대상도 리비도로 점유할 수 없게 되면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 결과 세상은 공허하고 무의미해진다. 대상과의 결속이 사라짐에 따라 자아는 자기 자신에게로 되던져진다. 자아는 자신과 충돌하여 파괴된다. 우울증은 자아 리비도의 나르시시즘적 누적으로 인해 생겨난다. - P38
모든 부정성의 제거가 오늘날 사회의 특징이다. 소통 또한 매끄러워져서 서로 만족감을 교환하는 행위가 된다. 슬픔처럼 부정적인 감정에는 어떤 언어도, 어떤 표현도 제공되지 않는다. 타인으로 인한 상처의 모든 형태가 회피된다. 그러나 이는 자기상해로 부활한다. 타자의 부정성을 추방하면 자기파괴의 과정이 초래된다는 일반적인 논리의 정당성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 P41
알랭 에랭베르에 따르면 우울증이 증가하는 것은 사람들이 갈등 관계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와 최적화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문화는 갈등을 처리하는 작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성과주체는 오직 두 가지의 상태만을 알고 있다. 기능하기와 실패하기다. 이 점에서 성과주체는 기계와 비슷하다. 기계 또한 갈등을 알지 못한다. 기계는 오류 없이 기능하거나, 아니면 고장이 났다. 갈등은 파괴적이지 않다. 갈등에는 건설적인 측면이 있다. 갈등을 통해서야 비로소 안정된 관계와 정체성이 성립된다. 사람은 갈등을 처리하는 작업을 하는 가운데 성장하고 성숙한다. 생채기를 내는 행위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갈등 처리 과정 없이, 누적된 파괴적 긴장을 신속하게 완화시켜준다는 점에서 유혹적이다. 생채기로 인한 화학 과정이 신속하게 긴장을 완화한다고 한다. 몸이 스스로 산출하는 마약이 뿌려진다는 것이다. 이 마약은 항우울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항우울제 또한 갈등 상태를 억압함으로써 우울한 성과주체가 신속하게 기능하도록 만든다. - P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