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성과 지속성은 소비에 적합하지 않다. 소비와 내구성은 서로를 배제한다. 유행의 가변성과 휘발성이 소비를 가속화한다. 그래서 소비문화는 내구성을 감소시킨다. 개성과 소비는 서로 대립한다. 이상적인 소비자는 개성이 없는 인간이다. 이 개성 없음이 무차별한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 P75

슈미트에 따르면 "하나 이상의 진정한 적을 가지는 것"은 "내면적 분열의 신호"다. 견고한 개성은 "적의 중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척도, 자신의 경계, 자신의 형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적과 "투쟁하면서" 대립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적은 "형상으로서의 우리 자신의 문제"다. 또한 단 한 명의 유일한 친구를 갖는 것도 어떤 인간이 견고한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해준다. 슈미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이 개성이 없고 형상이 없을수록, 매끄럽고 뱀장어처럼 미끄러울수록 더 많은 친구를 갖게 된다. 페이스북은 개성 없음의 시장이다. - P75

칸트는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에서 "재치"를 "두뇌의 사치"라고 불렀다. 재치는 곤궁과 필연성에서 해방된 자유의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재치는 "화사하다." "자연이 꽃을 가지고 주로 놀이를 하는 듯 보이는 것처럼. 이에 반해 자연은 열매를 가지고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꽃의 아름다움은 모든 경제로부터 자유로운 사치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강제나 목적이 없는, 자유로운 유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노동과 작업에 대립한다. 강제와 욕구가 지배하는 곳에는 유희를 위한 자유공간이 없는데, 유희는 미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는 사치의 현상이다. 다만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인, 필요한 것은 아름답지 않다. - P87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유로운 남자란 삶의 욕구와 강제에 속박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남자는 세 가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들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삶의 방식들과 다르다. 예컨대 돈벌이에 집중하는 상인의 삶은 자유롭지 않다. "이 세 가지 삶의 방식은 [......] 모두 ‘아름다움‘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 나아가 어떤 특정한 것에도 유용하지 않은 것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사물들을 향유하는 데 집중하는 삶과 폴리스에서 아름다운 행위들을 산출하는 삶,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연구하면서 영구적인 미의 영역에 머무르는 철학자의 관조적 삶이 여기에 속한다. - P88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름다움을 미적 감각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파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윤리학은 미의 윤리학이다. 정의 또한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추구된다. 플라톤은 정의가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행복의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칼로카가티아, 즉 아름다운 선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도입한다. 여기서 선은 미에 종속된다. 혹은 미보다 하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선은 미의 광휘 속에서 완성된다. 이상적인 정치는 미의 정치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