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전자가 우리의 맨얼굴과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페르소나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혹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이 페르소나와 관련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이나 재산 상태, 혹은 평판이나 지위가 모두 타인들에 의해 평가되고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는 섬세한 철학자였다. 그는 우리의 삶이 연극판처럼 진행된다는 사실을 통찰했지만, 연극을 맡은 배역 이면에 있는 맨얼굴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했다. 그에게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 즉 우리 자신의 고유한 믿음, 충동, 욕구, 혐오 등 우리 자신의 맨얼굴에 해당하는 것도 페르소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에픽테토스는 페르소나와 맨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간파했던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페르소나에 집착하다가 맨얼굴을 망각하거나, 혹은 맨얼굴에 신경 쓰다가 페르소나를 경시하는 것, 이 두 가지 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성찰로 인해, 우리는 삶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갈등이 어디로부터 유래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맨얼굴을 드러내야 할 때 페르소나를 쓰거나, 반대로 페르소나를 드러내야 할 때 맨얼굴을 보여주려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맨얼굴이 없다면 페르소나를 쓰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에게 맨얼굴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맨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불행히도 맨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벗는 순간 망가진 맨얼굴을 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에픽테토스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 P37

자신의 상처나 약점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칠 수가 없다. 상처를 냉정하게 진단하지 않는다면, 치료의 전망도 없을 것이다. - P40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했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 이지,『속분서』「성교소인」 - P43

나가르주나가 말한 ‘나‘는 일상적인 의미의 ‘나‘는 아니다. 여기서 ‘나‘는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불변하는 자아를 말한다. 유년 시절의 나는 청년 시절의 나와 다르고, 청년 시절의 나는 분명 노년의 나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경우나 ‘나‘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변하는 ‘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문법적 착각(grammatical illusion)으로 생긴 불변하는 자아가 없다는 것, 이것이 나가르주나가 말하고자 한 것이다. - P61

우리의 동일성(identity)을 규정하는 제일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롭게 펼쳐진 삶의 환경과 우리 내면의 습관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불일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습관대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맞게 자신의 습관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일까? 삶의 환경이 타락했다면 습관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아니면 삶의 환경이 더 좋아진 것이라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더 탁월한 선택일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미리 결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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