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은 선견지명에 빗대서 hindsight bias에 ‘후견지명 효과‘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에서 적응을 잘하는 사람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는 결과가 있다고 하면 ‘당연하지! 교육을 많이 받으면 스트레스 해소 능력이 향상되고 상황 적응 능력도 높아지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반대로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전쟁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는 결과를 소개하면 ‘당연하지. 생각이 너무 많으면 힘들어. 단순한 게 최고야‘라고 말한다. 도대체 사후에는 설명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 P46
일본의 심리학자인 고자카이 도시아키는 근대의 이상적인 자아상은 타인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생각해서 판단 · 행동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그런 인간은 실제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을 외부 정보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무지한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어떤 행동을 한 후에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라고 자문했을 때, 개인주의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내부에 그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 반성하고 자신의 행동에 더 강한 책임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주의적인 사람일수록 행동과 의식 사이의 모순을 완화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변경하기 쉽다고 한다. 그 반대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강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 당위 이외의 다른 변수들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행운에 의한 성공마저도 자기 자신의 신념과 열정과 결단이 옳았던 탓으로 돌리는 등 이들은 환경에 대한 통제력 착각을 더 쉽게 일으킬 수 있다. - P48
귀인 이론attribution theory을 체계화한 버나드 와이너에 따르면 귀인에는 상황적 귀인situational attribution과 기질때문귀인dispositional attribution이 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상황적 귀인, 성격 자체가 흉악하다든가 하는 기질 탓으로 돌리는 건 기질적 귀인이다(상황적 귀인은 ‘상황 귀인‘, 기질적 귀인은 ‘성향 귀인‘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선 상황적 귀인을 하는 반면, 타인에 대해선 기질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내 문제는 ‘세상 탓‘이지만 남의 문제는 ‘사람 탓‘이라는 논리다.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등은 197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런 성향을 ‘행위자-관찰자 편향‘으로 설명했다. ‘행위자-관찰자 비대칭‘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내 문제는 내가 행위자이므로 내 행위에 가해진 상황적 제약에 대해 잘 아는 반면, 다른 사람의 문제는 내가 관찰자에 불과하므로 상황적 제약에 대해 알기 어려워 사람 탓을 한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는 차로의 빨간불이 길게 느껴지는 반면, 길을 걸을 때는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길게 느껴진다거나, 다른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있는 소리는 시끄럽게 느껴지고 짜증이 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땐 그것이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거나, 다른 사람이 욕을 하는 것을 들으면 "무슨 저런 무식한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내가 기분 나쁘고 화나는 일이 생길 때 욕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모두 내가 행위자냐 관찰자냐 하는 처지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지각을 하면 "길이 막혀서 늦었어"라고 하며 지각의 원인을 외부 세상으로 돌리지만, 타인이 지각을 하면 "분명히 늦장을 부리다가 늦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지각의 원인을 당사자 내부 문제로 돌린다. 이런 오류가 발전해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스캔들"인 이중 기준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 승격되는 것이다. - P52
기본적 귀인 오류는 우리 삶의 기본일 정도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롤프 도벨리는 우리 인간이 석기 시대부터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 귀인 오류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조상은 생존을 위해 집단에 속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마음을 맞춰야 했다. 독자적인 길을 가는 사람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들이 살아남는 확률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머물며 살아남는 확률보다 적기 때문에 유전자풀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90퍼센트의 시간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데 쏟아붓고, 단 10퍼센트만 외부 상황의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 P54
우리는 자신의 부정적인 행동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상황적 · 환경적 요인으로 돌리는 반면, 자신의 긍정적인 행동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자신의 내부적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취업에 성공하면 ‘내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실패하면 ‘세상이 공정치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가리켜 ‘이기적 편향‘ 또는 ‘자기본위적 편향‘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고하는 방식"인데, 이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거나 방어하려는 욕구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기본적 귀인 오류‘와 ‘행위자-관찰자 편향‘은 긍정성-부정성에 관계없이 모든 행동이나 사건에 적용되며 단지 행위자냐 관찰자냐 하는 차이에서 편향이 생겨나는 것인 반면, ‘이기적 편향‘은 행동이나 사건의 긍정성-부정성 여부에 따라 각기 다른 설명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말에 좋은 건 자기 잘난 탓으로 돌리고 나쁜 건 부모 탓 또는 세상 탓으로 돌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 또한 이기적 편향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면서 자녀의 성공을 자신이 잘 키운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이기적 편향이다. 투자자들은 이익이 나면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손실이 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이기적 편향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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