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권력은 자신에 대한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항은 이미 그 권력이 약화되는 순간에 일어난다. 권력자가 무자비한 폭력을 필요로 한다면, 그의 권력 기반은 이미 허약해져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강력한 권력자는 권력을 펼치기 위해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폭력과 혼란은 포괄적인 권력이 부재하는 곳에서, 권력의 담지자여야 할 정치적 혹은 사회적 심급과 기관이 붕괴하는 곳에서 확산되는 것이다. 긍정적 형태로서의 권력은 형성하고 산출해내며 질서를 부여한다. 권력은 폭력과는 반대로 생산적이다. 권력은 혼란이 생겨나는 것을 막는다. - P6

권력이 반드시 강제라는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에 대립적인 의지가 생겨나 그에 맞서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그 권력이 나약해졌다는 증거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권력이다. - P14

강제로서의 권력이라는 모델은 권력의 복합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강제로서의 권력은 타자의 의지에 대항해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의 매개 수준은 매우 낮다. 여기서 에고와 타자는 서로에 대해 적대적 관계에 놓이며, 에고는 타자의 영혼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매개 수준이 높은 권력은 타자가 하려는 행동에 맞서는 권력이 아니라 그 타자로부터 솟아나 작용하는 권력이다. 더 강한 권력은 타자의 미래를 봉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형성해준다. 그러한 권력은 타자의 특정 행동에 맞서려는 대신, 타자의 행동반경에 영향을 주거나 그것을 변화시킴으로써 부정적인 제재 없이도 타자가 자발적으로 에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게 한다. 이를 통해 아무런 폭력 행사 없이 에고는 타자의 영혼 안에 자리를 잡는다. - P18

그에 반해 생명 없는 사물은 응답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존재가 특별한 점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외적 원인을 중단시키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키며, 그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게 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살아 있는 존재가 먹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서 그 먹이가 생명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원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 그 자체이다. 그것은 권력을 통해 외적인 것을 특정한 유기체적 과정의 원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유기체적 과정은 외적 원인들을 내부에서 반복하기만 하지 않는다. 그 과정은 살아 있는 존재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외적인 것에 자립적으로 반응한다. 외적 원인이란 살아 있는 존재에 의해 비로소 원인으로 규정되는, 여러 자극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원인 역시 살아 있는 존재에 의해 결코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기만 하지 않는다. 외적 원인은 내적 결정이나 스스로의 수용 없이는 결코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물체의 운동 에너지가 다른 물체에 전이되듯이 외적인 것이 그대로 내적인 것으로 연장되는 경우는 없다. 인과성이라는 범주는 정신적인 생명체를 묘사하는 데는 더더욱 부적합하다. 정신적 생명체의 복합성은 원인과 결과라는 일선적 관계로만 번역되지 않는 권력 행사의 복잡성을 조건 짓는다. 이 복잡성으로 인해 권력은, 힘 혹은 강함과 그 결과라는 단순 인과성으로 설명되는 물리적 폭력과 구별된다. 물리적 폭력이 갖는 장점이라면 이러한 복잡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뿐이다. - P19

권력이 자유를 배제한다는 견해가 고집스럽게 이어지지만,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에고의 권력은 타자가 자발적으로 에고의 의지를 따르는 관계에서 최고에 도달한다. 에고는 타자를 강제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권력이란 모순어법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가 자유로이 에고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얻으려는 자는 폭력이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절대적 권력은 자유와 복종이 서로 완전히 합일되는 순간에야 얻을 수 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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