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들을 가장 대규모로 모아놓은 빅데이터에도 지식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빅데이터는 상관성을 조사하는 데 사용된다. 상관성이란 A가 발생하면 흔히 B도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상관성은 인과관계, 즉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가장 원시적인 지식의 형태다. 그것은 그렇다. 왜라는 질문은 제기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식은 파악하기다. 빅데이터는 이렇게 사유를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은 그렇다‘에 만족한다. - P11
세계화는 모든 것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것,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따라서 같은 것으로 만드는 폭력적 힘이 있다. 전면적인 같게-만들기는 궁극적으로 의미의 소멸을 낳는다. 의미는 비교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돈만으로부터는 의미도 정체성도 생기지 않는다. 같은 것의 폭력으로서의 세계적인 것의 폭력은 정보와 소통과 자본의 순환을 방해하는 타자, 단독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의 부정성을 파괴한다. 같은 것이 같은 것과 만나는 지점에서 세계적인 것은 최고 속도에 도달한다. - P21
세계적인 것의 폭력은 일반적인 교환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단독적인 것을 쓸어 없앤다. 테러리즘은 세계적인 것에 맞서는 단독적인 것의 테러다. 어떤 교환도 거부하는 죽음은 단독적인 것 그 자체다. 죽음은 테러리즘과 함께 시스템 속으로 난폭하게 침입한다. 시스템 안에서 삶은 생산과 성과로 전체화된다. 죽음은 생산의 종말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죽음 예찬과 삶을 그저 삶으로서 무조건 연장하려고만 하는 오늘날의 건강 히스테리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다. "너희는 삶을 사랑하고,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라는 알카에다의 구호는 바로 이런 체계적인 연관을 지적하고 있다. - P22
신자유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엄청난 불의를 낳고 있다. 착취와 배제는 신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신자유주의는 체제비판적인 혹은 체제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달갑지 않은 인물들로 확인하고 배제하는 "반옵티콘banopticon," 즉 추방의 옵티콘을 구축한다. 판옵티콘은 훈육을 위해 작동하지만, 반옵티콘은 안전을 위해 작동한다. 서양의 복지 지역 안에서조차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철폐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뤼스토우는 이미 신자유주의적 시장법칙에만 맡겨지면 사회는 반인간적으로 변하고, 사회적인 배척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연대와 공동체의식을 산출하는 "생명정치"로 신자유주의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를 이 생명정치로 교정하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에 좌우되는 대중이 생겨날 것이며, 이들은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세력들에 쉽게 포섭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바뀐다. 자신에 대한 걱정은 외국인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증오로도 표현된다. 두려움의 사회와 증오의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다. - P24
돈은 정체성을 매개해주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정체성을 대체할 수는 있다. 돈은 적어도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느낌을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돈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정체성도, 안전도 없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상상적인 것으로, 예컨대 신속하게 정체성을 제공해주는 국수주의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적을 발명해낸다. 그 한 예가 이슬람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의미를 제공해주는 정체성을 갖기 위해 상상적인 경로를 통해 면역성을 구축한다. 자신에 대한 걱정이 무의식적으로 적에 대한 갈망을 일깨운다. 적은 상상적인 형태 속에서도 신속하게 정체성을 제공해준다. "적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형태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척도를, 나 자신의 경계를, 나 자신의 형태를 획득하기 위해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 상상적인 것은 현실 속의 결핍을 보충해준다. 테러리스트들 안에도 상상적인 것이 내재한다. 세계적인 것은 현실적인 폭력을 야기하는 상상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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