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없음. 사랑하는 자의 특별한 감수성은 그를 쉽게 상처 입는 존재로 만든다. 가장 깊숙한 내면까지 가장 쉽게 상처를 입는다." - P53

『말테의 수기』에서 릴케는 본다는 것을 상처로 묘사한다.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이 내 자아의 미지의 영역 속으로 침범하도록 온전히 내버려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보기를 배우는 것은 전혀 적극적이지도, 의식적이지도 않은 과정이다. 오히려 그것은 내버려두기 혹은 어떤 사건에 자신을 내맡기기를 말한다. "나는 보기를 배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내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고, 평소에는 언제나 종착지였던 곳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던 내면을 가지고 있다. 지금 모든 것이 거기로 간다.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 P54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미는 도덕과 개성을 표현할 때만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개성의 미가 섹시함에 밀려나고 있다. "19세기에는 중산층 여성들이 섹스어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때 매력적이라고 여겨졌다. 아룸다움은 육체적이자 정신적인 속성으로 이해되었다. [......] 성적인 매력 그 자체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 기준은 미뿐만 아니라 도덕적 개성과도 분리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성과 심리적인 특성들을 궁극적으로 섹시함에 종속시킨다. - P73

성적 매력을 몸의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은 해방의 논리만을 일면적으로 좇지 않는다. 몸의 상업화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용산업은 몸을 성적 대상으로 만들고,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몸을 착취한다. 소비와 섹시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성적인 매력을 근거로 하는 자아는 소비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소비문화는 미를 점점 더 자극과 흥분의 도식에 종속시킨다. 미의 이상은 소비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의 추가적 가치는 모조리 제거된다. 미는 매끄러워지고, 소비에 종속된다. - P74

섹시함은 도덕미나 개성미에 대립한다. 도덕과 덕성 혹은 개성은 특별한 시간성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지속성, 견고성, 불변성에 기초한다. 개성은 원래 낙인찍힌 기호,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의미한다. 불변성이 개성의 주요한 특성이다. 카를 슈미트는 어떠한 고정된 표시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물을 개성이 없는 요소라고 불렀다. "바다에는 [......] 어떠한 선도 견고하게 새길 수 없다. [......] 바다는 근원적 의미에서의 개성을 갖고 있지 않다. 개성은 ‘심다, 새기다, 인각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diarassein에서 유래되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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