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 편향은 앞으로 살펴본 ‘행동 편향‘에 반하는 성향인가? 꼭 그렇진 않다. 롤프 도벨리는 "행동 편향은 어떤 상황이 불분명하고 모순적이고 불투명할 때 작용하는 반면, 부작위 편향은 대개 통찰 가능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폐해는 행동을 통해서 예방하려고 노력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폐해를 예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지는 못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P28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Think like a man of action and act like a man of thought"고 했다. 쉽지 않은 주문이긴 하지만, 이 명언이야말로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슬기로운 중용의 해법이 아닐까? - P29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앨렌 랑거는 그런 환상을 가리켜 ‘통제의 환상‘이라고 불렀다. 현실적으로 권한이 없는 뭔가에 대해 통제하거나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으로, ‘통제력 착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1등이 많이 나온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간 나온 당첨번호들에 대한 분석을 하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하는 것이 좋은 예다. - P32
여러 실험 결과, 통제의 환상은 정신 건강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기통제력이 약할수록, 즉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작을수록 스트레스는 커지고 그만큼 건강이 악화된다. 이는 아무리 강도 높은 운동을 하더라도 자신이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즐길 수만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정도도 높아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즉, 삶과 일이 하나가 되면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늙은 부모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일을 자식의 보살핌에만 의존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효도일까? 현명한 자식들은 그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직감으로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랑거가 1976년에 발표한, 요양원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노인들에게 책임감과 선택을 증가시켜 ‘통제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 그들의 건강과 행복에 더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격무에 시달리더라도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들은 멀쩡한 데 반해 대통령 참모나 재벌 회장 비서들이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해 정신적 · 육체적으로 쉽게 무너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들은 애국심이나 애사심이 부하들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온전히 장악할 수 있는 자기통제권을 가지고 살지만 참모들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측근 참모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니 동일한 상황에서도 자기통제권을 가진 리더에 비해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훨씬 많은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런 현상을 ‘우리 회장님의 놀라운 건강 체질과 강철 같은 의지‘ 따위로 해석하는 일은 어리석다. 아무 언질도 없이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대기를 강요받는 자가용 운전기사 중에서 만성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가 많은 것도 자기통제권 상실이 결정적 이유다." - P33
통제의 환상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나 도구에 의해 부추겨질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가 1990년에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파워포인트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이 통제의 환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예일대학 정치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에드워드 터프트는 「파워포인트의 인지적 스타일」이라는 논문에서 파워포인트가 ‘정보 제공‘보다는 ‘설득‘에 치우쳐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청중의 온전한 이해보다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에게 확신감을 주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03년 2월 1일 우주인 7명을 희생시킨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폭발 참사에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2010년 4월 27일자 1면에 실린 「우리의 적은 파워포인트다We Have Met the Enemy and He Is PowerPoint」라는 기사도 군대에서 보고나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많이 사용하는 파워포인트가 매우 복잡한 문제들을 마술적으로 축소함으로써 큰 위험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쟁과 비판을 억압하고 의사 결정 과정을 헝클어뜨릴 뿐만 아니라 이해와 통제라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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