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경제학은 종교입니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리라고 가정하죠. 하지만 이것은 믿음일 뿐 증거는 없어요"라고 단언한다. - P7

그렇다고 해서 ‘이론 만능주의‘를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이론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는 시도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론은 사고를 그 어떤 틀에 갇혀버리게 만드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바로 이게 문제다. 사람들이 이론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모두 다 나름의 이론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야구계에 떠도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이론은 칫솔과 같다. 모든 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론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론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야구 선수들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다. 그것이 고정관념이든 편견이든 버릇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 P10

이스라엘 학자 마이클 바-엘리는 축구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들을 관찰했다. 3분의 1은 공을 골대의 중앙, 3분의 1은 왼쪽, 3분의 1은 오른쪽으로 차더라는 게 밝혀졌다. 그런데 골키퍼들 중 2분의 1은 왼쪽으로 몸을 날렸고 2분의 1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확률은 같은데도 중앙에 멈춰 서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 그랬을까? 동네 축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것이다.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공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틀린 방향으로라도 몸을 날리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일 뿐만 아니라 골키퍼 자신도 심적으로 덜 괴롭다.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도 행동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 편향은 인류의 오랜 진화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냥꾼과 채집가들이 살던 환경에서는 번개처럼 빠른 반응이 생존하는 데 중요했으며, 오히려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크게 달라졌지만, 인간의 그런 습성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P20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불운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실제로 무언가 행동을 하고 나서 불운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보다 더 크다. 불운이나 실패를 겪을지언정 ‘그래도 최소한 노력은 했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주식거래에서는 주식을 팔지 않고 장기간 보유하고 있는 게(즉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고객이 보기에는 증권 브로커가 뭔가 행동을 취해야만 그가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고객 입장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으라고 브로커에게 돈을 지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도 증권 브로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해 있다. 국민 역시 정부가 가만 있으라고 세금을 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행동 편향은 정부의 대학 입시 정책에서 나타난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 즉 간판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입시 방법을 좀 바꾸는 수준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은 달라질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데도 입시 정책을 가지고 사실상 장난을 치는 어리석은 짓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주호는 장관이 되기 전에 "장관 따라 정권 따라 바뀌는 입시 제도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교육부 장관이나 대통령 마음대로 입시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역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에 굴복해 언론에서 "정권마다 성형수술되는 대입에 국민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대입 성형수술‘은 계속되었다. - P21

개인 차원에서든 사회 차원에서든 행동 편향은 사라지기 어렵다. 우리 인간은 행동을 예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지만, 행동(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속담과 격언이 훨씬 많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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