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인간이 작업장에서는 AI와 경쟁할 수 없더라도 소비자로서는 늘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제적으로 사회와 무관한 존재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 경제가 우리를 소비자로서조차 필요한 존재로 여길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그 역할도 기계와 컴퓨터가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경제도 충분히 가능하다. 광산 기업이 철을 생산해서 로봇 기업에 팔고, 로봇 기업은 로봇을 만들어 광산 기업에 팔고, 다시 광산 기업은 더 많은 철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철은 다시 더 많은 로봇을 만드는 데 쓰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런 기업은 은하계 멀리까지 성장하고 확장해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는 로봇과 컴퓨터뿐이다. 자신들의 생산물을 인간이 사주는 일조차도 필요하지 않다. 실제로 이미 컴퓨터와 알고리즘은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고객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가령, 증권거래소에서 알고리즘은 채권, 주식, 상품의 가장 중요한 매입자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광고 사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객은 사람이 아닌 일개 알고리즘, 즉 구글 검색 알고리즘이다. 사람들은 이제 웹페이지를 디자인할 때 어떤 사람의 취향보다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취향에 더 신경을 쓴다. 알고리즘에는 의식이 없는 게 확실하다. 인간 소비자와 전혀 달리 자신이 구매한 것을 즐길 수도 없고, 자신의 감각과 감정에 따라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구글 검색 알고리즘은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없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내부 계산과 내장된 선호를 기반으로 대상을 고른다. 이런 선호가 점점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규정할 것이다. 구글 검색 알고리즘은 아이스크림 판매자의 웹페이지 순위를 매기는 데 관한 한 대단히 정교한 취향을 갖고 있다. 가장 크게 성공하는 아이스크림 판매자는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글 알고리즘이 최상위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실을 직접 겪어봐서 안다. 책을 출간할 때 출판사는 내게 온라인 홍보에 쓸 짧은 글귀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출판사에는 그 분야의 특별한 전문가가 있어서 내가 써준 것을 구글 알고리즘의 취향에 맞춰 다듬는다. 이 전문가는 내가 쓴 문장을 검토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이 단어는 쓰지 마세요. 대신 저 단어를 쓰세요. 그러면 구글 알고리즘에서 주목을 더 많이 받을 테니까요." 우리는 알고리즘의 시선만 붙잡을 수 있다면 인간의 시선은 당연히 따라올 거라는 사실을 안다. - P69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보편 지원 구상 덕분에 2050년에는 빈곤층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 지구에 불평등이 만연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사라진 것에 극도로 분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조작돼 있고, 정부는 초부유층에만 봉사하며, 미래는 자신과 자녀들에게 더욱 나빠질 거라고 느낄 것이다. - P77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서만 설계되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기대는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조건도 포함된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는 높아지며, 그 결과 여건이 극적으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보편 기본 지원이 2050년 평균인의 객관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꽤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주관적으로 더 만족하는 것과 사회적 불만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P77
그 목표를 진정으로 달성하려면 보편 기본 지원은 스포츠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른 의미 있는 추구에 의해 보완돼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실험이 일-이후 세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사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퍼센트가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들과 가족이 굶어 죽지 않는 비결은 흔히 부인들이 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에 부족함이 없도록 정부가 보조금과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그런 말이 생기기도 전’의 보편 기본 지원이다. 이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들은 가난하고 직업도 없다. 하지만 설문조사를 해보면 삶의 만족도가 이스라엘 사회의 다른 어떤 분파보다 높게 나온다. 이는 공동체의 유대감이 주는 결속력과 더불어, 성경 공부와 의례 수행에서 찾을 수 있는 깊은 의미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한 대형 직물공장보다, 남성들이 함께 모여 탈무드를 공부하는 작은 방에서 더 큰 즐거움과 참여감과 통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묻는 조사에서 이스라엘이 상위권에 오르는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런 무직의 가난한 사람들이 점수를 올려주기 때문이다. - P78
자유주의 이야기는 인간의 자유를 첫 번째 가치로 소중하게 여긴다.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인간 개인의 자유 의지에서 나오며, 그것은 각 개인의 감정과 욕망, 선택으로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정치에서 자유주의는 유권자가 제일 잘 안다고 믿는다. 따라서 민주적인 선거를 옹호한다. 경제에서 자유주의는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따라서 자유 시장 원리를 반긴다. 사적인 문제에서 자유주의는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에게 진실하고,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고 권장한다. 다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개인의 자유는 인권 속에 간직되어 있다._자유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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