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신기술이 야기할 모든 영향을 다룰 생각은 없다. 특히 오늘날 기술은 많은 놀라운 약속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나의 의도는 주로 그것이 초래할 위협과 위험을 조명하는 것이다. 기술 혁명을 주도하는 기업과 사업가 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학자나 철학자 그리고 나 같은 역사학자가 할 일이란 경고음을 내고 치명적인 잘못을 유발할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 P13

너무 야심차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여유가 없다. 철학과 종교, 과학 모두 시간이 다 돼간다.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인생의 의미를 두고 논쟁해왔다. 그러나 이 논쟁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다. 다가오는 생태학적 위기, 커져가는 대량 살상무기의 위협, 현상 파괴적인 신기술의 부상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는, 인공지능과 생명기술이 인간에게 생명을 개조하고 설계할 힘을 건넬 것이다. 머지않아 누군가 인생의 의미에 관한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어떤 이야기를 기반으로 이 힘을 어떻게 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학자는 인내심이 평균보다 훨씬 낮고 투자자는 최악이다. 생명을 설계할 힘으로 무엇을 할지 당신이 모른다 해도, 답을 찾을 때까지 1,000년의 시간을 시장 권력이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의 맹목적인 답을 당신에게 강요할 것이다. 인생의 미래를 분기 수익 보고서에 맡기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 P15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격동이 20세기의 참신한 이데올로기를 낳은 것처럼, 다가오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을 맞이해서도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은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 모델 구상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는 1930년대와 1960년대 위기 때처럼 다시 한 번 자기 혁신에 성공해서 이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종교와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자가 주지 못하는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은 아주 오랜 지혜를 활용해서 갱신된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오랜 신이나 민족뿐 아니라 근대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마저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가 된 걸까? - P40

이런 기술적 도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고용 시장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2015년 이래 나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정부 관리들, 사업가, 사회활동가, 학생들과 인간이 처한 곤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알고리즘, 생명공학에 대한 이야기에 참을성을 잃거나 지루해하면 단 한마디 마술같은 단어로 사람들의 주의를 다시 모을 수 있었다. 바로 일자리다. 기술 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인간을 고용 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무용 계급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이는 현존하는 이데올로기는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사회적,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멀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대량 실직ㅡ혹은 개인 실업ㅡ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전망 앞에서는 아무도 무관심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 - P42

특히 AI는 다른 사람에 관한 직관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인간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보행자로 붐비는 거리에서 차량을 운전하는 일이나, 낯선 사람에게 자금을 대출하는 일, 사업 협상에서 흥정하는 일 등 많은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정확히 측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저 아이가 길로 뛰어들려는 걸까? 정장 차림의 남성이 내 돈을 가지고 사라질까? 저 변호사가 위협을 주려고 저러는 걸까, 아니면 그저 허풍일까? 그런 감정과 욕망이 비물질적인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한, 컴퓨터는 인간 운전사와 은행원,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욕망이 사실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면, 이런 알고리즘을 해독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 컴퓨터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보행자의 의도를 예측하는 운전사, 잠재적 대출자의 신용을 평가하는 은행원, 협상 테이블에서 분위기를 감지하는 변호사는 마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는 상대의 얼굴 표정과 음성의 높낮이, 손의 움직임, 심지어 체취까지 분석하는 방법으로 생화학적 패턴을 파악한다. AI가 적절한 센서만 갖춘다면 인간보다 훨씬 정확하면서도 믿을 만하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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