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제 대답은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비난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볼까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 경우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좋지 않을 겁니다. 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바꾸기 싫은데 남들이라고 바꾸고 싶겠습니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인격체이며 독립해서 활동하는 정보 처리 주체입니다. 이해관계, 경험, 학습, 개인적 성향에 따라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며 똑같은 정보도 다르게 처리합니다. 이미 지니고 있는 인식과 가치관에 잘 들어맞는 정보는 쉽게 수용하지만 날카롭게 충돌하는 정보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뇌에 ‘폐쇄적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있다는 말, 혹시 들어 보셨나요? 그런 것이 정말로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믿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 다른 이론, 다른 해석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 남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죠. 사람은 스스로 바꾸고 싶을 때만 생각을 바꿉니다.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열다섯 살이 넘어 뇌가 이미 다 자란 사람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대화하는 것뿐입니다. 강요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그 사람의 견해는 그것대로 존중하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남이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생각을 바꿀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조각이라도 그 사람의 뇌리에 남아서, 지금 가진 생각에 대해 지극히 사소한 의심이라도 품을 수 있게 한다면 그 대화는 성공한 겁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자신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죠. - P95
저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가진 종(種)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도 불신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욕망을 다 가진 존재입니다. 욕망은 아름답고 또한 추악합니다. 이성은 고결하지만 때로 나약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빛나는 선과 끔찍한 악을 다 저지릅니다. 저는 인간의 사악함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악함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여서 악한 사람 자신도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악이 생기면 그 원인을 나쁜 사람한테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악이 악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 P101
지금까지 여러 직업을 거쳤고, 서로 다른 자기소개서를 숱하게 써 본 사람으로서 자기소개서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노파심에서, 뱀다리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조금은 비굴해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누구에겐가 잘 보이고 싶어서 애쓰는 모습 말입니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고 똑같이 귀한 소우주(小宇宙)인데 누구에겐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버둥거리다니,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하면서 존엄을 잃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확인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독립해서 살아가는 철학적 주체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군집(群集)’을 이루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입니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며 운명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서로 서로 잘 보여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누군가에게 자기를 제대로 소개하려고 애쓰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빌며! - P126
독서는 타인이 하는 말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 그 사람이 표현한 감정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겁니다. 평가와 비판은 그 다음에 하면 됩니다. 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글 속으로 들어가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읽어야 평가와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이입해서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다음, 자기 자신의 시선과 감정으로 그 간접 경험을 반추해 보는 작업이 비판적 독해라는 말이지요. - P153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죠. 설사 다 읽을 수 있다 해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으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사귀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의미도 없고요. 행복하게 살려면 나하고 잘 맞는 사람, 통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해야 합니다. 맞지 않는 사람과 다투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요. 같은 이치로 내게 재미있는 책,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감동받는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게 최선입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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