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100퍼센트 확실한 건 아닙니다. 제 경험입니다만, 글에서 본 작가와 실제로 본 작가의 모습이 아주 다른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요. 한때 힘찬 저항시로 이름을 날렸던 어떤 시인이 실생활에서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하더군요. 섬세하고 나긋한 서정시를 썼던 작가가 알고 보니 권력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속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작가는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글을 쓸 때만 경건해지기도 했고, 환경이 바뀌면 행동 양식도 금세 따라 변하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심리학자들은 사람에게 복수의 ‘페르소나(인격)’가 있다고 하더군요. 감정이 크게 흔들리면 이성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도 하고요.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랍니다. 그러니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에 대해서 지나친 신뢰를 보내지는 않는 게 현명하겠지요. - P40

그런데 세상에는 시비와 선악과 미추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악한 사람, 추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도 많아요. 악하지 않은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미학적 도덕적 직관 또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영구히 또는 한시적으로 잃어버린다는 것이죠. 왜 그렇게 될까요? 욕망과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욕망과 감정과 충동은 선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나쁜 것, 고약한 것도 많습니다. 탐욕, 두려움, 시기심과 같은 부정적 욕망과 감정, 충동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압도하면 도덕적 미학적 직관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글 쓰는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 욕망만은 아닙니다. 훌륭한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와 사상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념과 종교의 교조가 도덕적 미학적 직관을 질식시키기도 하거든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역사 사례가 있습니다. 중세 교회가 자행한 마녀 사냥과 십자군전쟁, 유럽인들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대학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독재와 대숙청,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 북한의 우상숭배와 3대 세습, 소위 이슬람국가(IS)의 민간인 참수와 같은 어리석음과 죄악의 배후에는 그것을 정당화한 지식인의 말과 글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과 글로 만든 이념과 종교의 도그마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목 졸라 죽였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벌어진 겁니다. - P49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 저에게 진보냐고 묻는 분들, 진보적 원칙을 글쓰기에 어떻게 반영하느냐고 묻는 분들게 솔직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사실에 부합하는가? 문장이 정확한가? 논리에 결함이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가? 독자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가? 그런 것만 살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면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 근처까지라도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입니다.
예술은 자유를 먹고 피어납니다. 돈과 권력만 사람의 생각과 감각을 얽어매는 게 아닙니다. 고정관념과 이념의 교조에 생각과 감정이 묶이면 글이 진부해집니다. 빤한 글, 지루한 글, 첫 문장만 보아도 마지막 문장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을 쓰게 됩니다. 독창적인, 기발한, 창의적인, 흥미로운, 반전이 있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진보냐 보수냐? 내 이념을 어떻게 글쓰기에 반영할까?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헛된 질문을 털어 버리고 오로지 아름다운 것과 옳은 것만 생각하면서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씁니다. - P60

인터뷰이가 말한 그대로 실었다고는 하지만, 제가 <프레시안> 편집자였다면 당사자의 양해를 구해서 표현을 살짝 고쳤을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렇게 기사가 나갔습니다. 저는 변영주 감독의 발언 취지에 어느 정도 공감했습니다만 표현 방식은 그리 좋게 보지 않았어요. 책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저자에 대한 험담이 될 수 있는 말이니까요. 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쓰레기 같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쓰레기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쓴 사람을 쓰레기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글과 사람은 다르거든요. 저는 제가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쓰레기 같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자신하지는 못합니다. - P68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 운명적인 단독자입니다. 단독자의 삶은 고독합니다. 어떤 말, 어떤 글, 어떤 행동으로도 둘 이상의 단독자가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면서 교감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홉 개의 악플을 흘려보낸 끝에 정상적인 댓글 하나를 찾고 좋아합니다. 알고 지내는 사람 열 가운데 단 하나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인생이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타인에 대한 기대 수준을 바닥으로 내리는 것을 현명한 처세술로 여깁니다. 그렇게 하면 악플에 상처받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악플 세례를 받은 끝에 제가 발견한 정신승리법입니다. 저는 악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악플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지도 않습니다. 제 취향대로 글을 쓰고, 제 감정과 생각을 타인과 나누면서, 제 색깔대로 살아갑니다. ‘치열한 무플’로 악플의 파도와 싸우면서!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