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과 전혀 다르며, 그들에게 빚진 것은 전혀 없다. 우리는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우리 영토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으며, 그들의 영토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수단의 딩카족(수단의 유목 부족) 언어에서 ‘딩카’는 그냥 ‘사람들’이란 뜻이다. 딩카가 아닌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딩카의 숙적은 누에르족이다. 누에르족 언어에서 누에르는 무슨 뜻일까? ‘원래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수단 사막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알래스카의 동토와 시베리아 북동부에는 유픽족이 살고 있다. 유픽어로 ‘유픽’이란 단어는 무슨 뜻일까? ‘진정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 P280
역사상의 선인과 악당 역사를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 깔끔하게 나누고 모든 제국은 나쁜 편에 속한다고 분류하고픈 유혹이 들기는 한다. 어쨌든 거의 모든 제국은 유혈사태 위에 세워졌고 압제와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 대부분은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하고 있다. 제국이 정의상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세상에는 인간의 문화에서 제국주의를 제거하고 죄에 더럽혀지지 않은 소위 순수하고 진정한 문명만을 남기자는 취지의 학파와 정치운동이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잘해봐야 순진할 따름이고, 나쁜 경우에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편견을 가리려는 표리부동한 눈속임으로 기능한다. 어쩌면 역사의 여명에 출현했던 무수히 많은 문화들 중 일부 문화는 순수하고 죄에 물들지 않았으며 다른 사회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명기 이후에는 어떤 문화도 그런 주장을 합리적으로 펼칠 수 없었으며, 오늘날 존재하는 문화 중에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인류의 모든 문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이며, 어떤 학술적, 정치적 외과수술을 한다 해도 환자를 죽이지 않고 제국의 유산만을 도려낼 수는 없다. 예컨대 오늘날 독립한 인도 공화국과 영국령 인도 제국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관계를 생각해보라. 영국은 인도를 정복하고 점령하는 과정에서 인도인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식민 정부는 수억 명 이상의 인도인을 지속적으로 모욕하고 착취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많은 인도인은 개종의 기쁨을 누리면서, 민족자결이나 인권 같은 서구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영국이 스스로 천명한 가치에 부합하도록 인도인들에게 영국인과 동등한 권리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 실망했다. 그럼에도 인도라는 현대 국가는 대영제국의 자식이다. 영국인들은 인도 아대륙의 거주자들을 살해하고 부상을 입히고 처형했지만, 왕국과 공국과 부족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며 혼란스럽게 뒤섞였던 것을 하나로 통일하여 공통의 민족의식을 가지고 어느 정도 하나의 정치 단위로 기능하는 국가를 창조해냈다. 영국인들은 인도 사법제도의 초석을 놓았으며, 행정부 구조를 창건했고, 경제적 통합에 극히 중요한 철도망을 건설했다. 독립 인도는 영국에서 구현된 형태의 서구식 민주주의를 정부 형태로 받아들였다. 영어는 아직도 공용어로 쓰여, 힌디어, 타밀어, 말라얄람어를 쓰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중립적 언어로서 쓰인다. 인도인들은 크리켓 경기를 매우 좋아하고 차를 열심히 마시는데, 둘 다 모두 영국의 유산이다. 상업적 차 재배는 19세기 중반까지 인도에 존재하지 않다가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 인도 전체에 차를 마시는 문화를 퍼뜨린 것은 젠체하는 영국인 사입(sahib, 과거 인도인이 신분 있는 유럽인을 불렀던 호칭)들이었다. 오늘날 인도인 중에서 민주주의, 영어, 철도망, 사법제도, 크리켓, 차가 제국주의의 유산이라며 여기서 벗어나자고 국민투표를 요구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들이 옛 지배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 아닐까? 설령 우리가 더 이전에 존재했던 진정한 문화를 재건하고 지키려는 희망에서 잔인한 제국의 유산을 모조리 거부하더라도, 보나마나 그때 우리가 지키는 것은 그보다 오래되고 덜 야만적인 제국의 유산에 불과할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인도 문화가 불구가 되었다고 분개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굴 제국의 유산과 그들의 델리 점령을 신성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외래 무슬림 제국의 영향에서 ‘진정한 인도 문화’를 구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굽타 제국, 쿠샨 제국, 마우리아 제국의 유산을 신성시하는 셈이다. 만일 어떤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자가 있어서 뭄바이 기차역을 비롯해 영국 정복자가 남긴 모든 건물을 파괴한다면, 인도의 무슬림 정복자들이 남긴 타지마할 같은 구조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문화적 유산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 첫걸음은 이 딜레마가 복잡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선인과 악당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보통 악당들의 뒤를 따른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려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 P291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준이 있다.
1. 종교는 인간의 변덕이나 계약의 산물이 아닌 초인적 질서가 있다고 여긴다. 프로 축구는 종교가 아니다. 수많은 규칙과 의식과 이따금 기묘한 의례가 있지만, 모두가 잘 알듯이 축구는 인간이 발명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은 언제라도 골문의 크기를 늘리거나 오프사이드 규칙을 폐기할 수 있다.
2. 이런 초인적 질서를 기반으로, 종교는 스스로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는 규범과 가치를 설정한다. 오늘날 많은 서구인이 유령이나 요정, 환생을 믿지만, 이런 믿음이 도덕과 행동의 기준의 원천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할 능력이 있지만, 모든 종교가 그 잠재력을 작동시킨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인간 집단들이 사는 광대한 영역을 자신의 기호 아래 묶어두려면, 종교에는 두 가지 초인적인 속성이 필요하다. 첫쨰, 언제 어디서나 진리인 보편적이고 초인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한다. 둘쨰, 이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달리 말해,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이슬람교나 불교처럼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종교는 보편적이고 선교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상 대부분의 고대 종교는 지역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신자들은 국지적 신과 영혼을 믿었으며, 인류 전체를 개종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한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종교는 기원전 1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고, 보편적 제국과 보편적 화폐의 등장과 매우 비슷하게 인류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 P298
하지만 위대한 신들의 등장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양이나 악마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지위였다. 애니미즘은 인간을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한편 다신교는 세상이 신들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다는 시각을 점점 더 키워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도와 희생과 죄업과 선행이 생태계 전체의 운명을 결정했다. 멍청한 사피엔스 몇 명이 신들을 노하게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홍수가 닥쳐와 수십억 마리의 개미와 메뚜기, 거북, 영양, 기린, 코끼리를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다신교는 신들의 지위뿐 아니라 인간의 지위도 격상시켰다. 옛 애니미즘 체계에 속하던 다른 불운한 존재들은 지위를 잃고, 인간과 신의 관계라는 위대한 드라마에서 엑스트라나 말없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 P303
선과 악의 싸움 다신교는 일신교만 낳은 것이 아니라 이신교도 낳았다. 이신교는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의 존재를, 즉 선과 악을 믿는다. 일신교와 달리 이신교에서 악은 독립적인 힘이다.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그 신에 종속된 것도 아니다. 이신교는 온 세상을 이들 두 힘의 전쟁터로 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싸움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신교는 이른바 악의 문제에 간명한 해답을 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이 유명한 문제는 인간의 사상에서 가장 근본적 관심사 중 하나다.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할까? 왜 고통이 존재할까?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일신론자들은 이런 물음에 대답하려면 지적인 곡에를 부려야만 했다. 전지전능하며 완벽하게 선한 하느님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알려진 하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라고 했다. 악이 없다면 인간은 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유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답으로서, 즉각 수많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악을 선택하도록 허락한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악을 택하며, 일신교의 정통적 설명에 따르면 이런 선택은 반드시 신의 벌을 부른다. 그러나 만일 그 인물이 자유의지로써 악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신이 미리 알았따면, 신은 왜 그를 창조했을까? 신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이런 답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일신론자들이 악의 문제에 쩔쩔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신론자들에게는 악을 설명하기가 쉽다.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 신에 의해서만 통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독립된 악의 힘이 돌아다니고, 악의 힘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 이신론자들의 견해에는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한다. 만일 세상을 유일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질서가 잘 잡히고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현실이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움을 관장하는 법칙을 정한 존재는 누구인가? 두 나라가 싸울 수 있는 것은 둘 다 똑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인도의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는 것은 양국에서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일 선과 악이 싸운다면, 이들을 따르는 공통의 법칙은 무엇이며 그 법칙은 누가 정했는가?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이신교는 1천 년 이상 번성했다.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란 이름의 예언자가 중앙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의 교리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마침내 가장 중요한 이신교인 조로아스터교가 되었다. 그 신봉자들은 세상을 선신인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인 앙라마이뉴 사이의 우주적 싸움터로 보았다. 인간은 이 전쟁에서 선신을 도와야만 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350)에서 중요한 종교였고, 나중에는 사산 제국(기원후 224~651)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이후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거의 모든 종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노시스파와 마니교 등 여러 이신교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마니교는 기원후 3~4세기 동안 중국에서 북아프리카로 퍼졌으며, 잠시나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누르고 지배적인 종교가 될 것으로 예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니교도들은 로마의 영혼을 기독교도들에게 빼앗겼고,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한 사산 제국은 일신교를 믿는 무슬림들에게 무너졌다. 이렇게 해서 이신교의 파도는 잦아들었다. 오늘날 이신론을 믿는 공동체는 인도와 중동에 한 줌 정도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일신교의 물결이 정말로 이신교를 싹 쓸어낸 것은 아니다.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이신교에서 수많은 신앙과 관례를 흡수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일신교’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 사상 일부는 사실 그 기원이나 정신이 이신교적이다.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이 강력한 악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 악마로 부르는 것이 그런 존재다. 이 존재는 선한 신에 대항해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고, 신의 허락 없이 파괴를 불러올 수 있다. 일신론자가 어떻게 그런 이신론적 신념을 품을 수 있을까(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것은 구약에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거나 둘 다 전능하지는 않은 서로 대립되는 힘을 믿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순을 믿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수백만 명의 경건한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이 전능한 신과 독립적인 악마를 둘 다 동시에 믿는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은 심지어 선한 신이 악과 싸울 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런 상상은 여러 가지를 고취시켰는데 이 중에는 자하드와 십자군을 일으켜야 한다는 요구도 포함된다. 또 다른 이신교인 그노시스파와 마니교의 핵심 개념은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을 정확하게 구분한다. 이들 종교에 따르면 선신은 정신과 영혼을, 악신은 물질과 육체를 창조했고, 인간은 선한 영혼과 악한 육체의 전쟁터 역할을 한다. 일신교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을 그렇게 정확히 구분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육체와 물질이 악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쨌든 만물은 동일한 선한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일신론자들은 악의 문제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 이신론자들의 이분법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선과 악의) 대립은 결국 기독교와 무슬림 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천국(선신의 영역)과 지옥(악신의 영역)에 대한 믿음 역시 그 기원은 이신론에 있었다. 구약에는 이런 믿음의 흔적조차 없다. 사람들의 영혼이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산다는 주장 또한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일신론은 역사에서 나타났듯이 일신론과 이신론, 다신론, 애니미즘 유산이 하나의 신성한 우산 밑에 뒤섞여 있는 만화경이다.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사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와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으로, ‘제설諸說혼합주의’를 썼다.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단 하나의 위대한 세계 종교일지 모른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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