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우리가 웅변가의 유창한 언변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하더라도 가장 고귀한 문어는 대부분의 경우 덧없는 구어의 저 멀리 훨씬 위쪽에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별이 가득한 하늘이 구름 저편에 있는 것과 같다. 별들이 있으면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천문학자들은 끊임없이 별들을 설명하고 관찰한다. 문어는 우리가 매일같이 나누는 말이나 덧없는 숨결과 같은 무의식적인 발산물이 아니다. 광장의 웅변이라는 것은 대부분 서재에서 볼 때는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 웅변가는 한순간의 행사에 떠오르는 영감에 몸을 맡기고 눈앞에 있는 군중을 향해, 요컨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한다. 그에 반해 작가는 보다 평온한 삶이 그의 행사인 셈이고 웅변가를 자극하는 사건이나 군중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 뿐이며, 인류의 지성과 치유를 위해,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말을 거는 사람이다. - P123
책은 세계의 소중한 재산이며 세대와 민족의 온당한 유산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그곳 선반에는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서적들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게 마련이다. 책은 스스로를 위해 아무런 변호도 하지 않지만, 그것이 독자를 계발시키고 고무시키는 한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책의 저자들은 어느 사회에서든 자연스럽고도 매혹적인 엘리트로서, 왕이나 황제 이상으로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책을 경멸하는 무식한 장사꾼이 모험심과 근면함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여유와 자립을 성취하여 부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면,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더욱 높고 그러면서도 아직 다가갈 수 없는 지성과 천재의 사회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그럴수록 자신의 불완전한 교양과 자신이 소유한 부가 얼마나 공허하고 불충분한 것인지를 통감한다. 이때 그는 뛰어난 판단력으로 자식들에게 자신이 그토록 결핍을 느꼈던 지적 교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결국 그는 한 가문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다. - P124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지금까지의 기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줄 책이 우리를 위해 어딘가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어딘가에 표현돼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를 혼란케 하고 어리둥절하고 난처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과거의 모든 현자들도 직면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한 문제도 빠지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현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삶으로 그 문제들에 해답을 주었다. 나아가서 우리는 책에서 지혜와 더불어 관대함도 배우게 될 것이다. 콩코드 교외 농장에서 고용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그는 제2의 탄생과 독특한 종교적 체험을 거쳐 자신의 신앙에 따라 말없는 엄숙함과 배타성을 신조로 삼게 된 사람인데)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천 년 전 조로아스터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체험을 했지만, 그럼에도 현명한 그는 그 일이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고 그에 따라 이웃을 대하고 하나의 종교를 창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용살이를 하는 그로 하여금 겸손하게 조로아스터와 벗삼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모든 위인들의 관대한 감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도 알도록 해주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 교회’라는 말은 아예 떼어 버리도록 하면 어떨까? - P130
나는 삶의 여백을 아낀다. 여름날 아침에는 습관이 된 목욕을 마친 후 해뜰녘부터 정오까지 볕 잘 드는 문간에 앉아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옻나무에 둘러싸여 평온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몽사에 잠기곤 했다. 새들이 지저귀며 소리 없이 집 안을 날아다녔다. 그러다 서쪽 창으로 햇빛이 들거나 큰길을 지나는 여행자의 마차 소리에 문득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이런 계절이면 나는 하룻밤 사이에 크는 옥수수만큼이나 쑥쑥 자랐으며, 손으로 어떤 노동을 했을 때보다도 훨씬 훌륭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여느 때의 할당량을 훨씬 초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동양인들이 명상에 잠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참뜻을 이해했다. - P135
그 다음으로 스페인 산 생가죽이 실려 있는데, 그 꼬리는 소들이 스페니시 메인의 대초원을 질주할 때의 모양 그대로 위를 향해 구부러져 있다. 요컨대 이것은 모든 고집의 표본으로서, 타고난 모든 악덕이 얼마나 고치기 힘든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자리에서 고백컨대,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의 진정한 성품을 알게 됐을 경우 현재의 상태에서 더 좋은 것으로든 나쁜 것으로든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는다. 동양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개의 꼬리를 불에 구워 눌러놓고 끈으로 칭칭 감아놓는 일을 12년 동안 반복하더라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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