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라니!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 그것보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위나라의 재상 거백옥은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근황을 알아보게 했다. 공자가 그 사자를 가까이 앉히고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주인은 뭘 하고 계시오?" 사자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제 주인님은 자신의 허물을 줄이고자 하시지만 그 일이 끝이 없나이다." 사자가 가고 나자 그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사자로구나! 정말 훌륭한 사자로다!" - P113
우리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이처럼 비천한 삶을 영위하는 것 역시 우리의 눈이 사물의 표면을 꿰뚫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일 거라고 생각한다. 만일 오직 사실만을 볼 줄 아는 누군가가 있어 마을 안을 돌아다닌다면 마을의 물방아둑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이 본 사실을 알려 준다 해도 우리는 그가 말하는 물방아둑이 어디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공회당이나 군청, 구치소, 상점, 집들을 보고 진정한 눈으로 응시할 경우 그것들이 무엇처럼 보일지를 말해 보라. 그러면 그것들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것들 모두가 산산조각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있다고, 천체의 바깥이나 가장 먼 별의 저편, 아담 이전에 있었거나 최후의 인간 이후에나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원에는 뭔가 참되고 숭고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이곳이다. 하느님 자신도 현재라는 순간에 완결되는 것이며 그 어느 시대에도 지금보다 더 거룩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 흠씬 젖어듦으로써만 숭고하고 고귀한 것을 파악할 수가 있다. 우주는 끊임없이 또한 유순하게 우리의 생각에 응답해 준다. 우리가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언제나 우리의 길은 마련돼 있다. 그렇다면 생각하면서 삶을 영위하도록 하자. 어떤 시인이나 예술가의 구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해서 후손이 완성시킬 수 없을 정도였던 적은 없었다. - P115
이제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일을 하면서 두 발을 의견, 선입견, 전통, 망상, 허상 따위의 진흙밭 깊숙이 집어넣자. 파리와 런던, 뉴욕과 보스턴과 콩코드, 교회와 국가, 시와 철학과 종교를 통틀어 이 지구를 덮고 있는 그 퇴적물들 속으로. 그러다 보면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단한 바닥에 이르러, 바로 여기가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나서 지지점이 생겼을 때 홍수와 서리와 불 밑에 벽이나 국가를 세울 만한 자리를, 가로등 기둥이나 측량기를 세울 만한 자리를 만들기 시작하자. 나일강 수위를 재기 위한 측량기가 아니라 진실을 측량하기 위한 계기를 말이다. 그리하여 후세인들이 기만과 겉치레의 홍수가 얼마나 범람했던지를 알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당신이 똑바로 서서 사실을 대면하면 흡사 언월도(偃月刀)라도 되듯 그 사실의 양면에 번쩍이는 햇살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예리한 날이 당신의 심장과 골수를 자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행복하게 지상에서의 운명을 마치게 될 것이다. 삶이 됐든 죽음이 됐든 우리가 갈구하는 것은 오로지 진실뿐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 죽어 가고 있는 거라면 목구멍 안에서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을 테고 임종의 싸늘함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 있는 거라면 부지런히 할 일을 하도록 하자. - P116
우리 자신 또는 후손을 위해 재산을 모으거나 가정이나 국가를 세우거나 명성을 얻어도 우리는 죽을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진리를 다룸에 있어서는 불멸이나 다름없으며 그 어떤 변화나 불의의 사고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대 이집트 인이 아니면 인도인 철학자가 신의 조각상에서 베일의 한 자락을 들쳐 올렸는데, 그 떨리는 옷자락은 여전히 들려 있는 채로 남아 있으며 나는 지금도 그 철학자가 그랬듯 신선한 영광을 응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 그토록 대담했던 것은 바로 그의 안에 있는 나 자신이었고, 지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자는 바로 내 안에 있는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옷에는 그 사이 먼지 하나 앉지 않았다. 신성이 발견된 이래로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개선하고 또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은 과거나 현재, 미래가 아니다. - P120
그리스어로 호머나 아이스킬로스를 읽는 학생이라면 방탕이나 사치에 빠질 염려가 없을 텐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본뜨려 할 테고 아침나절을 그들의 저서로 신성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설혹 우리 모국어로 인쇄된 것일지라도 이 영웅시들은 타락한 이 시대에는 죽은 말로 된 듯이 읽힐 것이다.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 같은 단어에서도 우리의 일상 용법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짐작하면서 그 낱말이나 행 하나하나의 의미를 애써 판독해야 한다. 오늘날 번역본의 값도 더 내려가고 인쇄물도 풍부해졌지만 그렇다고 이 고대의 영웅시 작가들이 좀더 가까워진 것은 아니다. 그들과 그들의 글은 예전에 그랬던 만큼이나 진기하고 유별나 보인다.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으로 고대의 언어를 몇 마디 배우기만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 언어는 거리의 진부함에서 벗어나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농부가 주워들은 라틴어 몇 마디를 기억해서 암송하는 것도 헛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현대의 보다 실질적인 학문을 위한 길이 되어 줄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모험심에 넘치는 학생이라면 그것이 어떤 언어로 씌어지고 그 언어가 얼마나 오래된 것이든 상관없이 고전을 공부할 것이다. 고전이란 인간의 사상 중에 가장 고귀한 내용을 기록한 것에 다름아닐 테니까. 고전은 사멸되지 않은 유일한 신탁이며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도 델포이나 도도나 신전조차 주지 못한 해답을 줄 것이다. 자연이 오래된 것이라 해서 자연을 공부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책을 잘 읽는 일, 다시 말해서 참된 정신으로 참된 책을 읽는 일은 숭고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관습이 존중하는 그 어떤 운동보다도 힘든 일이다. 그 일은 운동선수가 하는 것만큼 훈련을 필요로 하며,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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